갑) 한때는 착해서...
을) 황성~을 사수하기 위해...
병) 후세 사가들이 헥갈리고로 (특히 친일관계)...
정) 미욱한(?) 백성들이 사고치고로 (그시절 張氏 눈높이에서)....
근데요~
혹시 시일야~~~방성대곡~아입니꺼???
뭐~ 기던 아니던 신경쓰시지는 마이소~ ^^
그나저나~
좋은나라에서 좋은세상 만나 건국훈장을 탄 친일파...
오밤중에 목놓아 울던 양반이 (진심인진 잘 몰지만~ ㅡ,.ㅜ)
우쨋던간에~ 저승에선 목놓아 통곡하지~~~시품더~ ㅡ,.ㅡ;;
변절하지 않는 일심은 그래서 그 가치가 다르지~싶네요
(그냥 제 좁은 생각임더~ ㅡ,.ㅡ)
을) 황성~을 사수하기 위해...
병) 후세 사가들이 헥갈리고로 (특히 친일관계)...
정) 미욱한(?) 백성들이 사고치고로 (그시절 張氏 눈높이에서)....
근데요~
혹시 시일야~~~방성대곡~아입니꺼???
뭐~ 기던 아니던 신경쓰시지는 마이소~ ^^
그나저나~
좋은나라에서 좋은세상 만나 건국훈장을 탄 친일파...
오밤중에 목놓아 울던 양반이 (진심인진 잘 몰지만~ ㅡ,.ㅜ)
우쨋던간에~ 저승에선 목놓아 통곡하지~~~시품더~ ㅡ,.ㅡ;;
변절하지 않는 일심은 그래서 그 가치가 다르지~싶네요
(그냥 제 좁은 생각임더~ ㅡ,.ㅡ)
한잔하고 유쾌하게 웃을 때도 있고..
불의에 격분할 때도 있고..
슬픈 일에 오열할 때도 있을 수 있겠는데..
하오메이(好美)넝감께서도.. X나 X나 다 X는구나.. 격분했듯이
위암 영감님(41세 장년이지만)께서도.. 미래의 하오메이처럼..
격분과 항거의 논설을 집필하신 모양입니다..ㅎㅎ
불의에 격분할 때도 있고..
슬픈 일에 오열할 때도 있을 수 있겠는데..
하오메이(好美)넝감께서도.. X나 X나 다 X는구나.. 격분했듯이
위암 영감님(41세 장년이지만)께서도.. 미래의 하오메이처럼..
격분과 항거의 논설을 집필하신 모양입니다..ㅎㅎ
에구 깜딱이야.. 유결자화님이 거참이를 놀라게 만드십니다..ㅎㅎ
..
옛날 학생시절에 배웠습니다만 이젠 세세한것은 기억이..ㅠ.ㅠ
인터넷 검색해 보면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만,..^^
간단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
.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1864(고종 1)∼1921. 경북상주출생]
..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사설을 써서
일제의 침략 흉계를 통박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렸으며,
이로 인해 투옥 되었다가 이듬해 1월 출옥.
..
1908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해조신문의 주필이 되었다. 그 뒤 중국 각지로 유랑하다 귀국 후 진주의 경남일보 주필이 되었으나 1910년 일제가 국권을 강탈한 뒤 실의에 빠져있다가 1921년 마산에서 사거. 1962년(박정희 쿠데타 다음 해-군정시절)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 단장이 수여됨.
..
유감스럽게도 말년에 '일본 찬양'의 친일행적을 남겨 애국지사의 면모에 스스로 오점을 남김. 안타깝게도..!
..
옛날 학생시절에 배웠습니다만 이젠 세세한것은 기억이..ㅠ.ㅠ
인터넷 검색해 보면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만,..^^
간단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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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1864(고종 1)∼1921. 경북상주출생]
..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사설을 써서
일제의 침략 흉계를 통박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렸으며,
이로 인해 투옥 되었다가 이듬해 1월 출옥.
..
1908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해조신문의 주필이 되었다. 그 뒤 중국 각지로 유랑하다 귀국 후 진주의 경남일보 주필이 되었으나 1910년 일제가 국권을 강탈한 뒤 실의에 빠져있다가 1921년 마산에서 사거. 1962년(박정희 쿠데타 다음 해-군정시절)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 단장이 수여됨.
..
유감스럽게도 말년에 '일본 찬양'의 친일행적을 남겨 애국지사의 면모에 스스로 오점을 남김. 안타깝게도..!
참고자료: [원문 그대로 인용]
<‘시일야방성대곡’ 발표의 뒤안> - ‘횡설수설’: [동아일보](1989. 11. 4)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장지연은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이 조약이 무효임을 알리는
<시일야방성대곡>이란 글을 발표하였다.
일본은 마음대로 조약 체결이 안 되자 고종 황제의 허가 없이
거짓 날인하고 일방적으로 이를 공표했다.
한일합방의 전주곡인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은
1905년 11월 17일이었고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3일 후인 20일이었다.
이날 [황성신문]이
'오건조약청체전말(五件條約請締顚末)'이란 조약의 내막을
폭로한 기사와 함께 저 유명한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의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 放聲大哭)>이란 사설을 실었기 때문이었다.
1904년 7월 노일전쟁으로 한국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이
군사훈령을 발표하여 국내 모든 정기간행물에 대한 사전 검열을 하고 있었는데,
이 기사와 사설은 사전검열을 받지 않은 채 나갔다.
위암이 이 사설을 술에 취한 채 썼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40세의 장년 위암은 [황성신문] 사장으로 직접 붓을 잡고 이 사설을 쓰다가
채 끝마치지 못한 채 정신을 잃었는데,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유근(柳瑾)이 대신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이다.
백척간두의 나라의 운명을 지켜보던 당시 지식인들의 심정이나,
끝내는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 듯 자신의 일신을 초개같이 버린
그들의 결단과 용기는 대단했다.
이 신문이 나가자 장안은 삽시에 울음바다가 되었고
위암과 신문사 간부들은 일군에게 체포되었으며,
[황성신문]은 정간됐다.
위암의 옥중시 중에
'입 있어도 말하기란 새처럼 어렵고 무심히 지내자니 물고기만도 못하구나'라는 구절이
당시의 긴박한 정국이나 구한말 지사들의 심정을 전해 준다.(하략)
<‘시일야방성대곡’ 발표의 뒤안> - ‘횡설수설’: [동아일보](1989. 11. 4)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장지연은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이 조약이 무효임을 알리는
<시일야방성대곡>이란 글을 발표하였다.
일본은 마음대로 조약 체결이 안 되자 고종 황제의 허가 없이
거짓 날인하고 일방적으로 이를 공표했다.
한일합방의 전주곡인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은
1905년 11월 17일이었고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3일 후인 20일이었다.
이날 [황성신문]이
'오건조약청체전말(五件條約請締顚末)'이란 조약의 내막을
폭로한 기사와 함께 저 유명한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의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 放聲大哭)>이란 사설을 실었기 때문이었다.
1904년 7월 노일전쟁으로 한국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이
군사훈령을 발표하여 국내 모든 정기간행물에 대한 사전 검열을 하고 있었는데,
이 기사와 사설은 사전검열을 받지 않은 채 나갔다.
위암이 이 사설을 술에 취한 채 썼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40세의 장년 위암은 [황성신문] 사장으로 직접 붓을 잡고 이 사설을 쓰다가
채 끝마치지 못한 채 정신을 잃었는데,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유근(柳瑾)이 대신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이다.
백척간두의 나라의 운명을 지켜보던 당시 지식인들의 심정이나,
끝내는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 듯 자신의 일신을 초개같이 버린
그들의 결단과 용기는 대단했다.
이 신문이 나가자 장안은 삽시에 울음바다가 되었고
위암과 신문사 간부들은 일군에게 체포되었으며,
[황성신문]은 정간됐다.
위암의 옥중시 중에
'입 있어도 말하기란 새처럼 어렵고 무심히 지내자니 물고기만도 못하구나'라는 구절이
당시의 긴박한 정국이나 구한말 지사들의 심정을 전해 준다.(하략)
선배님 감사합니다....
바쁜일이생겨서 이제야 컴을 봅니다...
시원한 답 감사드림니다..
팀이프 정모때 울산오시면 곡차 한잔 올리겠습니다...
내내 건강 하십시요....
꾸벅~~
바쁜일이생겨서 이제야 컴을 봅니다...
시원한 답 감사드림니다..
팀이프 정모때 울산오시면 곡차 한잔 올리겠습니다...
내내 건강 하십시요....
꾸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