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거참 형님.(시일야방 대성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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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거참 형님.(시일야방 대성곡)

1 유결자화 6 1,173 2009.08.17 02:35
장지연은
왜?

(시일야방대성곡)을 그토록 썼을려고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견해 있으신분들 께 도움청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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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1 호미 09-08-17 11:02 0  
갑) 한때는 착해서...
을) 황성~을 사수하기 위해...
병) 후세 사가들이 헥갈리고로 (특히 친일관계)...
정) 미욱한(?) 백성들이 사고치고로 (그시절 張氏 눈높이에서)....

근데요~
혹시 시일야~~~방성대곡~아입니꺼???
뭐~ 기던 아니던 신경쓰시지는 마이소~ ^^

그나저나~
좋은나라에서 좋은세상 만나 건국훈장을 탄 친일파...
오밤중에 목놓아 울던 양반이 (진심인진 잘 몰지만~ ㅡ,.ㅜ)
우쨋던간에~ 저승에선 목놓아 통곡하지~~~시품더~ ㅡ,.ㅡ;;


변절하지 않는 일심은 그래서 그 가치가 다르지~싶네요

(그냥 제 좁은 생각임더~ ㅡ,.ㅡ)
1 허거참 09-08-17 15:39 0  
한잔하고 유쾌하게 웃을 때도 있고..
불의에 격분할 때도 있고..
슬픈 일에 오열할 때도 있을 수 있겠는데..
하오메이(好美)넝감께서도.. X나 X나 다 X는구나.. 격분했듯이
위암 영감님(41세 장년이지만)께서도.. 미래의 하오메이처럼..
격분과 항거의 논설을 집필하신 모양입니다..ㅎㅎ
1 유결자화 09-08-20 13:44 0  
호미님 감사드림니다..
건강하시죠...
구 닉네임이 독까시였습니다..
감사의 글이 늦었습니다..
갑짜기 바쁜일이생겨서 이제야 보네요...
꾸벅..
1 허거참 09-08-17 15:20 0  
에구 깜딱이야.. 유결자화님이 거참이를 놀라게 만드십니다..ㅎㅎ
..
옛날 학생시절에 배웠습니다만 이젠 세세한것은 기억이..ㅠ.ㅠ
인터넷 검색해 보면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만,..^^
간단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
.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1864(고종 1)∼1921. 경북상주출생]
..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사설을 써서
일제의 침략 흉계를 통박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렸으며,
이로 인해 투옥 되었다가 이듬해 1월 출옥.
..
1908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해조신문의 주필이 되었다. 그 뒤 중국 각지로 유랑하다 귀국 후 진주의 경남일보 주필이 되었으나 1910년 일제가 국권을 강탈한 뒤 실의에 빠져있다가 1921년 마산에서 사거. 1962년(박정희 쿠데타 다음 해-군정시절)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 단장이 수여됨.
..
유감스럽게도 말년에 '일본 찬양'의 친일행적을 남겨 애국지사의 면모에 스스로 오점을 남김. 안타깝게도..!
1 허거참 09-08-17 15:50 0  
참고자료:  [원문 그대로 인용]

<‘시일야방성대곡’ 발표의 뒤안> - ‘횡설수설’: [동아일보](1989. 11. 4)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장지연은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이 조약이 무효임을 알리는
<시일야방성대곡>이란 글을 발표하였다.

일본은 마음대로 조약 체결이 안 되자 고종 황제의 허가 없이
거짓 날인하고 일방적으로 이를 공표했다.

한일합방의 전주곡인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은
1905년 11월 17일이었고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3일 후인 20일이었다.
이날 [황성신문]이
'오건조약청체전말(五件條約請締顚末)'이란 조약의 내막을
폭로한 기사와 함께 저 유명한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의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 放聲大哭)>이란 사설을 실었기 때문이었다.

1904년 7월 노일전쟁으로 한국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이
군사훈령을 발표하여 국내 모든 정기간행물에 대한 사전 검열을 하고 있었는데,
이 기사와 사설은 사전검열을 받지 않은 채 나갔다.


위암이 이 사설을 술에 취한 채 썼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40세의 장년 위암은 [황성신문] 사장으로 직접 붓을 잡고 이 사설을 쓰다가
채 끝마치지 못한 채 정신을 잃었는데,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유근(柳瑾)이 대신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이다.

백척간두의 나라의 운명을 지켜보던 당시 지식인들의 심정이나,
끝내는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 듯 자신의 일신을 초개같이 버린
그들의 결단과 용기는 대단했다.

이 신문이 나가자 장안은 삽시에 울음바다가 되었고
위암과 신문사 간부들은 일군에게 체포되었으며,
[황성신문]은 정간됐다.
위암의 옥중시 중에
'입 있어도 말하기란 새처럼 어렵고 무심히 지내자니 물고기만도 못하구나'라는 구절이
당시의 긴박한 정국이나 구한말 지사들의 심정을 전해 준다.(하략)
1 유결자화 09-08-20 13:41 0  
선배님 감사합니다....
바쁜일이생겨서 이제야 컴을 봅니다...
시원한 답 감사드림니다..
팀이프 정모때 울산오시면 곡차 한잔 올리겠습니다...
내내 건강 하십시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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