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 아직도 그 말씀 못 드렸네요
아득한 옛날인가요? 삼십 년도 더 되었는가요?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남몰래 병마와 씨름하시던
그때가 벌써 이토록 까마득해졌나요?
어머니는 그러셨죠.
처음에는 푼돈 만지기밖에 안 될지언정
무를 머리에 이고 팔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지세포에서 장승포로, 지세포에서 옥포로,
지세포에서 삼거리 재를 넘어 거제 읍내로.
지금은 거제시가 된 거제군 일대를
주린 허리 불끈 동여매고,
장딴지 푸른 심줄 툭툭 불거지든 말든,
무거운 무다라를 이고 다녔지요.
영숙이 저가부지가 키워
도 대회 나가 특상을 탄 무시 사이소.
세상에 나서 남편 자랑을 그토록
외고 패며 하는 여자는
어머니 이후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네요.
―시원한 무시 사이소. 이 청방무 맛 좀 보이소!
아버지 멸치어장 선주였을 때에
너무나 곱고 너그럽고
모든 윗사람 아랫사람들에게 햇살같이
베풀어주던 선주부인, 사장 사모님 우리 어머니.
어머니가 불현듯이 행상품목을 바꾸셨지요.
무시 장사로는 2남 3녀 우리 아이들
교육에 택도 음따, 체면이 밥믹이주나?
그랬지요.
어머니는 남의 어장에 가서 남이 잡아
남이 삶아 남이 말린 멸치를 떼어다가
팔러 다니기 시작하였지요.
대신에서 대동으로, 대신에서 소동으로,
대신에서 회진으로, 동네방네 다니다가
그래도 벌이가 시원찮다 싶었는지
또 삼거리 재를 넘기 시작하시데요.
멸치 사이소. 멸치 사이소.
금방 삶아 말린 멸칩니더.
멸치어장 선주 마누라가 보장하는 멸칩니더……
아파도 아파도 내색할 줄 모르던 아버지.
아버지는 한가한 강태공인 듯
유유자적 낚시를 다녔지요.
평생을 두고 보아도 찾을 길이 없는
그런 멋진 솜씨,
멋진 성격의 소유자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또 당신의 남편이 낚은
숭어를, 도다리를, 볼락을 멸치 대신에
이고 다니기도 하였지요.
미역국하고 천생연분 도다리 사이소!
배창시가 환장할만치 꼬소한 뽈래기 사이소!
어머니, 우리어머니. 그때 든 골병으로
언제부턴가 시작하여
시방도 다리를 절고 다니시는 어머니.
며칠 전에 갖다드린 명앗대,
이제 지팡이를 애인 삼으라고
한낱 풀인 명아주를 꼴란 한해 키워
그것도 선물이랍시고
낳아서, 길러서 평생
죽을 때까지 쓰다듬어주시는
어머니 사랑에 보답이라고 드리면서
그래도 그 말 한 마디는 깜박했네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애간장 다 빼내어 자식새? 먹이고도
그게 체할까봐 등까지 두들겨주시는
어머니……
아무리 몸이 아파도
자식새? 온다면 몸 벌떡 일으켜
밥쌀 안치는 어머니……
어머니 당신이 없었더라면
이 몸 무슨 수로 세상구경 했겠으며
무슨 수로 고귀한 남자, 내 아버지를
단 이십 년이나마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어머니,
일요일이 전화세 적게 나온다고
행여 전화하려면 반드시 일요일에만 하라고
가르쳐주신 우리 어머니.
오늘은 일요일도 아니고 해서 이렇게
카페 한 구석에
쪼글시고 앉아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선물로 드린 어머니의 애인
그 보잘것없는 풀은 그래도 지금 어머니 곁에
꼭 붙어 있으리란 믿음에 안도하면서,
이만 총총……
당신의 큰딸
영숙 올림.
(주영숙/시집:
참았습니다 그리워도,
그리워도) 중에서
============================
♡ 어머니의 말씀 ♡
- 기다려라, 그러면 네가 바라는 때가 올 것이다 -
남편과 다투고 친정으로 돌아온 딸에게
어머니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딸아, 나는 이럴 때마다
구약성서의 전도서를 읽으면서 힘을 얻었단다."
세상 모든 일에는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고
무너뜨릴 때가 있으면 세울 때가 있고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으면 춤출 때가 있고
돌을 던질 때가 있으면 돌을 거둘 때가 있느니라.
그리고 딸아!
찾을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고
지킬 때가 있으면 버릴 때가 있고
침묵할 때가 있으면 말할 때가 있고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전쟁할 때가 있으면 평화로울 때가 있느니라.
그러므로 딸아, 돌아가거라
가서 남편에 대한 너의 사랑을 보여라.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