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 짚고 하수도

신상품 소개


회원 랭킹


공지사항


NaverBand
[휴게실] 세상사는 이야기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게시판입니다.
▶특정인 비방/폭언/모욕/시비성 글은 예고없이 수정/삭제될 수 있으며, 일정기간 이용 제한 조치됩니다.
▶게시판 성격과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 또는 이동될 수 있습니다.

징 짚고 하수도

1 경주월드 13 1,300 2010.06.29 12:14
   우리동네 버들숲에는 남북으로 흐르는 개울이 있었다. 어른들은 그 개울에 수문을 달아 물길을 꺽었는데 거기에 놓은 대발에는 봄부터 은어랑 황어가 뛰어 올랐다. 그 한 쪽을 갈라 물 허리를 붙잡은 물레방아는 쉼없이 물줄기를 이고 돌았다. 물방앗간 짚단 위에는 가끔 동네 큰 형들이 누나들을 울리고 있었는데, 누나들은 치마를 두른 후에는 하나같이 꼭 울었다. 우린 관솔 구멍에다 서로 대가리를 비비다가 그것도 시들해지면 동구밖으로 나갔다. 강 기슭을 오르면 오백 살도 더 먹은 당수나무가 금줄을 두르고 배꼽마당 좌우의 잡목들을 거느리며 동네를 지키고 있었다. 
   봄이 되면 늘 중대가리들이 그 숲마당을 차지하고 같잖은 동네야구를 했다. 그 당시 우리 국민학생들은 돌대가리 축에 속해 있었는데 중학생은 중대가리, 고등학생은 고대가리로 불렸다.  그러나 동네를 통털어 아홉 명뿐인 중대가리들이 두 패로 나뉘다보니 항상 선수가 모자라는지라 우리 돌대가리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오늘은 누가 후보로 스카웃 될까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나는 3학년이 되도록 한 번도 후보로도 뽑히지 못했다. 그러나 그해 단오 전날, 나는 처음으로 동네야구 선수가 되었다. 
   당시 우리 동네는 단옷날을 최고의 명절로 쳤는데, 씨름은 물론이고 노래자랑과 연극 공연도 있었다. 연극은 몇년째로 연중행사인 흥부전이었는데, 흥부네의 구남매를 채우느라고 돌대가리들이 대거 광대역으로 픽업되곤 했었다. 나는 '배고파'라는 한마디 대사로 3년을 연거푸 흥부네 자식을 거친 경력으로 그해엔 배역이 없었다. 나를 포함해 별 볼일 없는 서너 명은 방아간 특설무대의 심부름용 과자가 동이나기를 기다렸다가 슬슬 동구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나는 중대가리 형들의 눈도장을 받으려고 빈 밀가루 포대를 들고 나갔다. 그리고 부지런히 호미로 금을 긋고 그 금따라 주전자 물을 부었다.
   선수 포지션은 한 패가  다섯 명뿐이니 투수, 포수, 1, 2, 3루수가 다였다. 울창한 숲나무 탓에 외야가 없으니 외야수도 없었다. 공은 연식정구 고무공이었고 악수표 글러브는 포수만 꼈다. 악수표란 밀가루 포대에 찍힌 한국과 미국이 악수를 하는 그림인데 그 손목엔 양국의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그걸 어른들이 썰어 변소 못걸이에다 걸기 전에 잽싸게 작업을 해야 했다. 두 겹으로 너댓 번 접다 보면 투박한 종이 장갑이 만들어지는데, 대체로 악수표 한 포대면 포수 글로브 두 개를 만들 수 있었다. 아무튼 나머지 야수는 모두 맨손이었다. 방망이는 물푸레나무로 다듬었는데 고무공을 제대로만 때리면 공은 신기하게도 납짝한 찐빵이 되어 맛있게 날아갔다. 우리가 찐빵 홈런이라고 부르는 건 당수나무를 넘길 때였는데, 마치 비행접시처럼 돌며 휘어지는 찐빵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야구용어랄 것도 없지만 베이스인 루를 '징(진)'이라 했고, 1루인 '훠스트'를 발음이 훨씬 수월한 '하수도'로, 2루 '새컨'을 듣기도 편한 '샛강'으로, 3루 '서드'를 비슷한 '사도'로, 홈은 '빵집'이라고 불렀다. 안타를 치고 나가면 1루수는 '하수도 치러 왔느냐', 어쩌다 2루로 가면 '샛강에서 뒈져라'며 놀리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우리들만의 용어인 '하수도', '샛강', '사도'는 꽤 그럴 듯한 '콩그리쉬'로 그 원조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그 패에 5번 타자로 들어가 하수도를 두 번 치고 샛강을 한 번 건넜다. 신이 났다. 9회말 수비까지 우린 한 점 차로 이기고 있었고 상대는 원 아웃에 주자는 하수도. 주자는 쥐새끼 풀방구리 드나들 듯 하수도에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샛강을 지키는 나는 바짝 정신을 차렸다. 마침 날아오는 고무공은 회심의 병살타 코스. 우리 팀 중대가리가 발악을 했다.
   "징 짚고 하수도! 징 짚고 하수도!"
   2루 베이스를 밟고 1루로 던지라는 고함이었다. 바로 스리 아웃으로 우리가 이긴다는 거였다. 그러나 두 발 옆차기로 뛰어드는 주자에 당황한 나는 진 짚는 걸 까먹고 하수도로 던져버렸다. 공은 가랭이가 찢어지게 벌리고 있던 하수도가 아니라 떼굴떼굴 구르다가 하필이면 한무더기 쇠똥 속에 박혀버렸다. 이미 게임은 역전패였고 허겁지겁 뒤늦게 던진 쇠똥공은 포수 뒷통수를 명중시켰다.   
   "등신아! 징 짚고 하수도면 이겼제! 흥부네나 갈 것이지!"
   나는 그날로 쫓겨났다. 비록 외야수도 없는 동네야구였지만 다 이긴 야구를 그렇게 져버렸다. 
   추억의 동네야구, 내 생애 유일했던 클린 업 트리오 5번 타자. 내가 빠진 하수도와 샛강. 
   그 샛강에 사태 난 홍수는 성인이 되고서도 늘 부적처럼 따라붙었다. 지갑을 집에 두고 식당으로 간다든지, 열쇠를 넣고 차문을 잠근다든지, 휴대폰 대신 리모콘을 들고 다닌다든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그 때마다 꿀걱 목젖에 힘을 주는 그날의 파노라마, 기를 모아 추스르는 나만의 주문이 있다. 

   "징 짚고 하수도!"
              

   ***by 경주월드/2010. 6. 29  
0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시면 "추천(좋아요)"을 눌러주세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13 댓글
54 범돔 10-06-29 12:18 0  
예! 잘있습니다.. 월드님도 건강히 잘계시죠! 지난번 보내주신 소품 유용하게 잘사용하고 있습니다..
1 육지고래 10-06-29 12:51 0  
잘 계시지요! 꼭 저 어릴적 얘기같네요! 물레방앗간 짚단 위에서 큰 형들이 누나들을 울리곤 했는데~~ 제가 그랬다고 할려니 나이가 조금 아래라서 동생인 관계로~~ㅋ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주뵙지도 못하고 보문호 동동주 집이 그립습니더....^&^
1 울산블루탱 10-06-29 22:30 0  
형님, 까맣습니다.
우예지내십니까?
요즘은 바빠서 손에
비린내 풍기기 힘들겠습니다.
1 꽝초보 10-06-29 14:25 0  
제가 바다낚시 처음 시작 할때,  경주월드님께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저를 기역 못하시겠지만, 저는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1 조경지대 10-06-29 20:58 0  
경주월드님!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오랜만에 인사 여쭙니다.

한동안  안보이시길래 어디 멀리 출타중이신가 했습니다.
울산.읍천도 두번이나 다녀왔는데  못 뵈었지요.

올려 주신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 YMCA 야구단  연습장면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1 울산블루탱 10-06-29 22:39 0  
조경형님, 잘 지내시죠?
세상 뭐 삼빡하고 재밌는 일 좀 없습니까요?
늙어가니 뭐든 다 허접해 집니다.
죄송합니다, 젊은 놈이 나이를 들먹그려서요.
형님처럼 산을 타볼까하고 작심한지 오랜데,
어느 쯤에나 취미를 함 붙여 볼렵니다.
1 울산블루탱 10-06-29 22:51 0  
경주월드형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한 두 달동안 배 밑바닥 박박 기다가
오늘은 우연히 인낚을 들었더니 형님이 계시네요.
가끔씩 형님을 뵐 때면
경륜에서 나오는 담소거리가 무궁무진한지라
우리집 백형처럼 푸근한 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제 일년이 가더니니만
벌써 여름이 다가옵니다.
여름고기가 비출 때
이 쪽으로 낚시나 한번 다녀가시길 바랍니다.
아, 참!
저 '하선장'입니다요.
1 허송세월 10-06-29 23:43 0  
오늘밤도 나갔는데........
수온이 14도.................ㅠㅠ
그래도 아들 아침반찬은 꺼내왔습니다.
그 동네분들이 이제 세금내라카데요.
남의 동네 고기 다 자바 간다꼬.ㅋㅋ
1 호미 10-06-30 00:08 0  
그라면..................
함 모딜까.... 노인학대낚시 제 3 회로~ ㅡ,.ㅡ
1 호미 10-06-30 00:11 0  
에구 봐라~ 2133578ㅐ765687&^%$$$$
.
경주월드님~~~~~~~~~~~~~ 방가+방가x방가~~~~~~~~~요
1 멈춤봉 10-06-30 16:35 0  
시덥잖은 세상 이바구,초등 대가리 속에서
간만에 '글'을 보고 갑니다~~

자주좀 오시기를 바란다면 ..............^^::

글!
거기 참 좋은긴데,
머라 말도 못하겠고,
남자 뿐만 아니라 다 좋은긴데.............^^*
 
포토 제목
 

인낚 최신글


인낚 최신댓글


온라인 문의 안내


월~금 : 9:00 ~ 18:00
토/일/공휴일 휴무
점심시간 : 12:00 ~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