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가 출토되어 호우총으로 명명되었고, 銀鈴塚은 은제 방울이 출토되었다고 지어졌습니다.
신라의 왕족 무덤은 발굴해보면 쌍봉이 많은데, 당대의 풍습이라고 합니다. 호우총은 당시 봉분이 허물어져 많이 훼손된 상태였는데 역시 발굴 도중 쌍봉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호우총과 은령총으로...
발굴에 참여한 학자 송석하(宋錫夏)는 이왕이면 경주 최대의 왕릉 봉황대를 발굴하자고 했는데, 초대 국립박물관장인 김재원 박사는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며 거절했답니다.
그의 회고록에 의하면, 첫 발굴이니 만치 규모가 적고 훼손이 심한 호우총 즉140호 고분으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것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 지를 몰라, 사전에 계획한 대로 총독부 마지막 박물관장이었던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를 억류하다시피 하여 발굴에 참여시켰다고 합니다.
주위 시선을 우려해 김 관장은 아리미쓰를 조선인이라고 둘러댔으며, 강점기 시대에 각종 고고학 발굴을 주도했던 아리미쓰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해방 1년이 지난 1946년에도 고분 발굴을 '지도'하게 됩니다.
이 무덤은 봉분 기준으로 지름 약 16m, 잔존 높이 약 4m에 지나지 않았는데, 여느 신라 적석목곽분이 그렇듯이 이곳 역시 덧널 안에서 금동관과 금동 환두대도(環頭大刀)를 필두로 유물이 잔뜩 쏟아졌습니다.
유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명이었던 이 고분에 '호우총'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준 '청동호우'란 것입니다.
요강처럼 생긴이 유물 몸체 밑바닥에서는 '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우十' 16자가 4행으로 양각 명기되었는데, 이 서체가 '김용준'의 표현대로 고예의 극치라는 것입니다.
을묘년은 이 호우가 제작된 연대 즉 AD 415년이며 광개토왕은 고구려 제19대왕입니다.
광개토왕은 생전 이름이 아니라 죽은 뒤에 그 아들인 장수왕이나 신하들이 추켜 붙인 시호로, 중국 집안에 있는 광개토왕비에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인데, 앞의 사진처럼 이 역시 같은 서체로 동일인이 확실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地'와 '境'은 같은 뜻임)
각설하고,
광개토왕 시호를 새긴 유물이 신라의 한복판에서 출토된 사실은 적잖은 의문을 던집니다.
삼국사기 등의 사서로 보면 호우가 주출된 을묘년, 즉, 415년(장수왕 3) 무렵에 고구려나 고구려계 유물이 신라영역에서 나오는 것이 이상할 까닭은 없습니다. 당시 고구려는 신라에 대한 영향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었고, 힘에서도 왜국에 시달리는 신라보다 압도적 우위에 있었습니다. 내물왕의 아들인 복호가 고구려에 볼모로 간 것으로 확인되며, 복호의 형, 즉 내물왕 장남인 눌지가 417년, 내물왕을 이은 실성왕을 쿠데타로 밀어내고 왕위를 찬탈할 때의 백 그라운드는 고구려임이 확고한 것이지요.
학계는 이 호우가 제작지가 고구려이며, 장수왕 3년에 광개토왕 3년상을 지내고 이를 기념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측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항하겠다며 출범한 고구려연구재단이 '디지털자료실' 중 '고구려' 편에서 홍보하고 있는 내용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이는 당시 고구려와 신라 간의 교섭이 실제적으로 매우 활발했음을 보여주고있는데, 신라 내물왕 이후 고구려군의 신라 영토 진주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논어의 '위정'편에는 이런 명문이 잇지요.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것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모르는 것은 모른다는 하는 것이 진정한 학문의 자세입니다.
고구려에서 제작된 호우가 신라 무덤에 부장됐다고 그것이 고구려 군사가 신라 영토에 진주했던 사실을입증한다고 보는, 무리수의 비약을 아무 거리낌도 없이 발표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립하려면 호우총 주출 무렵에 고구려군이 신라영토에 진주해 있어야 하고, 그 진주 고구려군 중 누군가가 이 청동호우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그렇게 소유된 청동호우가 경주로 유입되어 호우총에 묻힌 이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하는데, 이 중 한 부분도 확인되지 않았지요.
물증이 없는 심증만으로 추정하려는 오류는 이미 고고학의 영역이 아닌 주술적 점성학이라 하겠습니다.
차라리 다빈치 코드의 원조 격인 김용준의 '호우 코드'가 더욱 설득력이 있지요. 삼국사기의 기록에 그의 탁월한 고고학적 추론을 대입하면 청동호우의 다차원 함수가 술술 풀립니다.
내물왕, 실성왕, 눌지왕이 엮어내는 왕들의 음모와 세력의 형평, 거기에 존재하는 호우코드의 비하인드 스토리, 복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같은 거, 역사는 지극히 과학적인 체계이며 그 연대기에는 반드시 인위적인 엄청난 사실이 고리를 이룬다는 것이지요.
<경주월드코드>라는 소설이
기대됩니다.
<다빈치코드>도 베스트셀러 였는데
<경주월드코드>는 무슨 셀러가 될지
자뭇 궁금해 집니다.
이제 문학의 경지를 넘어
고고학의 경지까지
섭렵하시려는 형님의 열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건강하시고 새해에는
뜻하시는 일들이
순조롭게 풀려 나가길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