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대보름, 경칩이 숨 가쁘게 지나갔다.
며칠 예년기온보다 푹하다 했더니 황사와 짧은 비,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마지막으로 한차례 있다는 예보이고 보니
한가한 주말이 될듯하다.
지난 雨水 에는 동호회의 정기출조를 겸한 새해의 시조회.
마땅히 고른 장소가 남쪽 끝에서 동백의 붉은 기운이 제일먼저 번진다는 거제권.
봄이 오는 곳에는 언제나 동백이 먼저 있다.
거문도에서 첫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여 거제도 해금강에 올라선다.
지난해 통영까지 개통된 대전에서 통영간 도로를 따라서 5시간이 걸렸다.
편해진 도로 탓에 거제권 나들이가 수도권에서도 어렵지 않게 되었다.
자동차 불빛에 동백의 빨간 꽃망울이 보이기 시작하니 거제도에 들어선 모양이다.
높은 건물이 가득한 시가지의 모습만 보이기에
이곳이 섬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고
오랜만에 찾다 보니 많이 변한 모습에 길을 찾노라 잠시 헤매 긴했지만
언덕을 넘어서 보이는 방파제 불빛이 얼룩진 물빛을 보게 되자
바다 근처에 왔구나. 짐작이 되었다.
춥던 날씨도 주말에는 많이 풀리고 보니 제법 따뜻하게 느껴지는 바닷바람이 느껴진다.
웃고 죽은 돼지머리를 구하지 못했는지 케이크 한 덩어리가 대신 올라왔고
쌀 막걸리를 부어가며 모두의 안전을 기원하는 간단한 의식을 지내고
수온이 가장 높다는 소매물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휴일을 이용한 당일낚시에 무슨 욕심을 부리랴…….
그저 먹을 만한 학공치와 볼락이라도 몇 마리 낚으면 최상이라 생각했기에
바람이 의지될만한 편한 자리를 골라달라고 선장에게 부탁하여
발판 편한 홈통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
매물도는 몇 번 다녀갔었지만
낯설지만 눈에 익은듯하다 싶은 것이 갯바위이기 때문일 게다.
같은 장소라도 기억의 깊이에 따라 그 형상이 달라 보이는 법이다.
꽃이나 나무의 이름처럼 어떤 대상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도 크다
자주 다녀서 잘 아는 것처럼 여겨지는 곳도
막상, 다시 가서 새로운 발견을 할 때가 있다
사람에게 너무 잘 알려져서, 또는 많이들 찾아서,
찾는 이 없어서 그늘에 가려진다 해도 억울할 것이 없다.
깊고 푸른 바다에 발이 담겨 있으니 그리 억울해할 일은 아닐듯하다.
이날 함께한 손사장님은 선장이 건넨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해
낚싯대를 놓아 버렸고 손때가묻은 붉은 테가 둘린 낚싯대는 내 가방 속으로 옮겨왔다.
10년 전 여름날 추자를 찾아 푸렝이 돌돔 포인트를 향하는 배안에서
G민박의 박선장이 목소리를 깔고 물어왔다.
“금년에 연세가 어찌되셨는지요?”
“육십이 낼 모레요~!그런데 왜 물어보슈~??”
“아니……. 뭐……. 저 보다 형님이시군요?……. 잘 모실려고........-,,- ”
용치를 시작으로 혹돔이 올라왔고 작은 돌돔도 몇 마리 나오다가
원투 장구통릴의 줄이 뒤엉켜버렸다.
줄을 고르는 사이에 바닥에 걸렸는지 끌려 나오지를 않아
굴렁쇠에 감아 당겨보니 뒤엉킨 줄들이 얽혀 올라왔다.
당기고 풀고 싱갱이를 하다 보니 무언가가 끌려 나오기에
한 뭉텅이 해초가 뽑혀 나오나 했더니 40cm가 넘는 돌돔이 물고늘어져있지 뭐니?!
이런, 돌연변이, 힘 빠진 망신살 뻗친 돌돔을 보았나?
발밑에 늘어진 미끼달린 바늘을 물고 틈새로 힘차게 내달려야 할 놈이
제풀에 지쳐 절로 끌려나오다니?
분명히 정상적인 돌돔임을 확인하고 꾀미에 걸어 두었고
또 한 번 실수를 하여 줄이 뒤엉키고 말았다.
이번에도 줄을 풀어내다 앞 번과 같은 일이 일어나
큼지막한 돌돔을 또 한 마리 줍게 되었으니 별난 날을 만난모양이다.
맵싸하지는 않지만 살점 많이 잃지 않게 돌돔회 썰어
시원한 국민주 한잔 자리를 펼쳐놓았는데
손사장님은 무엇이 궁금한지 아침 일을 되물어온다.
“선장이 왜 나이를 물어봤을까? 머리에 염색을 안했더니만
형님으로 보였나보지? 선장도 나이가 적어보이지는 않던데?
정말 잘, 대접해 줄라나보지? “
“나이가 많거나 몸이 불편하면 갯바위에 접안할 때 신경을 써야하는데
못된 선장은 짐 되는 손님을 반가워하지 않는데요.
추자에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니 손님도 골라 받는다죠?! “
“나이든 사람은 낚시도 오지 말라 이 말이지?”
“아니 뭐……. 그런 놈도 있고…….저런 넘도 있고……. -_-;;”
“지는 언제까지 나이를 안 처먹는다 이거지?
개자석 같으니라구....... 紅顔白髮 안 달려들 놈이 어디 있다구........“
“도대체 개가 사람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 개새끼, 새새키 들먹입니까?!
저도 애견간데 우리 집 포동이를 대표해서 항의 할 거예요?! “
이날의 충격으로 손사장님의 낚시행각은 끝이 났고
짐 가방은 큼지막한 카메라와 부품이든 등 가방으로......
낚싯대 가방은 삼각대를 담은 가방으로 바뀌었고
낚싯대를 들었던 손에는 1000만 화소가 넘는 커다란 SLR 카메라가 들려있다.
여서도, 거문도, 덕우도, 거미 여를 누볐던 솜씨라지만 너무 오래전이라
어둑새벽에 찌를 이용한 낚시는 불편하시겠기에
5미터 장대를 하나 드렸는데 예전의 솜씨가 남아 있었는지
첫 고기를 쉽게 끌어내셨다.
망상어라는 놈이 볼락 물리라 끼워드린 청개비를 물고 나왔고
감성돔으로 생각되는 힘 쓰임에 뜰채지원을 요청하여 떠드리고 보니
30cm가 넘는 큰 망상어도 올라왔다.
노래미가 덤비는 것이 곧 날이 밝을 모양인데
일출을 담으려 삼각대위에 무거운 카메라를 차려 놓으셨지만
수평선에 드리워진 구름 탓에 일출은 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둠이 걷히며 주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구석진 틈새마다 쓰레기도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섬을 처음 찾을 때마다 엄청난 기대를 갖게끔 별천지는 아니라지만
한적한 갯바위를 독차지하는 기쁨은 특별했다.
지금같이 어느 섬을 가나 피할 수없이 많은 사람과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틈바구니의 쓰레기도 없었기에 말이다.
갯바위는 리필이 되지 않는다.
거대한 자연의 아름다운환경을 감상하는걸. 왜 모르는 걸까?
도대체 얼마나 더럽혀야 충족이 될까?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 한 마리의 고기도 버리지 않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예의를 갖추어야만
모두가 소망하는 바다의 미래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인식의 코드를 바꿀 때 찾아올 것이다.
날이 완전히 밝아도 해구경이 어려웠지만 든든히 껴입은 옷가지 덕에
추위를 느끼지도 않았고 많이 풀린 날씨가 고맙기 만할 따름이다.
단단한 미끼를 끼워도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것이 망상어 떼가 붙은 모양이다.
학공치의 크기도 너무 가늘어 몇 마리를 낚다간 시들해져 버렸다.
한낮이 되어 물 흐름도 좋고 햇살도 간간이 보이기에
남은 시간동안, 열심히 찌를 던졌지만 엉뚱한 고기들만 물려나온다.
자그마한 볼락, 우럭, 노래미…….
슬그머니 들어가는 찌를 빨리도, 늦게도 채 보았지만 미끼만 없어졌고
결국에는 걸려 올라온 것이 아기 손바닥만한 망상어.
철수시간이 다되었기에 짐을 꾸려놓고 청소하며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편하고 널찍한 곳이라 야영을 한 흔적도 보인다.
먼저 철수한쪽에서는 고기를 잡았느냐, 물어오는 것이 조과가 신통치가 않은 모양이다.
멀리, 원도 권으로 긴 일정을 잡아도 고기 구경을 제대로 못하고 올 때가 있는데
정해진 날의 짧은 일정에 고기구경이 쉬우리라고…….
등대 앞에서 하루를 보낸 팀은 불콰한 모습들이 야유회를 겸한 하루였나 보다.
“나~! UFO 봤어~! 봤다니까~?”
누군가의 곡차기운을 빌린 우스개 소리려니 흘려들었고
모은 고기를 방파제에서 손질하여 온갖 양념을 첨가한 모둠 회무침이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등장하였다.
큼지막한 양푼에 양념과 야채를 퍼 담고
손톱에 낀 땟국이 빠지도록 비벼대는 張가 놈의 손을 보니
입맛이 사라지는 것이 꼭, 늦은 점심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초록빛 바닷물에다 두 손을 안 담근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
홍도의 선상시즌이 오면 다시 찾게 될 거제도를 벗어나며
韓국장은 다음번 출조지를 제의한다.
“추자도 어때요? 1박2일로~?!”
(큰, 병이다. -_-바다를 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월요일 아침, 게시판에는 손사장님이 찍은 사진들이 아침 일찍부터 올라와있다.
새벽잠이 없으시다지만 보정의 손길이 느껴지니 감사, 또 감사~! ^^
金주사가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이상한 물체가 찍혀있다고 연락이 왔다.
낚시를 하던 근처에는 풍선이나 전깃줄도 없었으니
렌즈에 묻은 이물질이 아닐까도 생각해봤지만 다른 사진에는 나와 있지를 않으니
그때 누구 말대로UFO 가 아닐까?
모니터가 작아 분명치 않게 보였지만 UFO 일수도 있겠다. 싶었기에
원본을 받아 확인해 보기로 했다.
해상도 좋은 큰 모니터에 원본을 걸고 확대, 보정작업을 해보니
낚싯줄이 보이고 찌채비로 보였는데
잡히지 않는 고기를 탓하며 한잔, 두잔 맛보던 곡차가 열 잔이 넘어가자
누군가의 채비가 머리위로 드리워진 줄도 모르고 사진을 찍다 보니
기억도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모양이다. ^^;;;;;;;;;
또 다시 우리에게 주어졌던 하루라는 시간,
그리고 새벽이 주었던 의미가 또 한 번 새로워진다.
전쟁터 같은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우리에게
휴식의 시간과 더불어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고
동트기 전, 푸른빛이 감도는 바다를 보면 언제나 가슴이 벅차오른다.
새벽은 짙은 어둠을 물리쳤고 저 멀리 수평선 끝에서부터 달려온
눈부신 햇살이 갯바위에 닿으며 또 하루가 열렸다.
어둠이 한순간에 물러섰고 빛으로 채워지는 순간은
자연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르쳐 주는 삶의 진실이다.
오늘도 동호회의 살림꾼인 한국장이 앞에서 짐을 받아주었다.
‘앙드레지드’의 ‘좁은 門’에서는 ‘사랑이란’ 어두운 곳에서
여러 사람이 꺼진 촛불을 들고 있는데 한사람만이 켜진 촛불을 들고 있다면
그 촛불을 옆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이라 했다.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쓰임과안전한 동행출조를 위하여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의 자세를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세네카-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활동이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안일함이다. - 괴테
짬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짬이 없다. - 유럽 속담
오늘 할 수 있는 일에만 전력을 쏟으라. - 뉴턴
시간을 선택하는 것은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다. - 베이컨
가장 바쁜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갖는다.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 많은 대가를 얻는다. - 알렉산드리아 피네
하루하루를 우리의 마지막 날인 듯이 보내야 한다. - 푸블릴리우스 시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