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했던 손떨림과 방생을 해주지 못하였다는 약간의 안쓰러움까지 겹쳐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목요일 아들에게 토요일 새벽 출조가 가능하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오후에 전화가 온다. 금요일 오후에 내려갈테니 토요일 무조건 낚시 가자며~
형에게 전화를 했다. 토요일 출조가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자리가 있다길래 그럼 토요일 가겠다고 하고 작년 아들 생일 때 사주었던 빨간릴대와 릴의 안성맞춤을 한번 더 확인하며 아들의 환한 미소를 꿈꿔 본다.

요즘은 다육이 재미에 가끔 빠져들어봅니다.
한때 분재, 수석, 난 기타 참 많은 취미가 있었는데 관리 소홀로 전부 증발이 되어버렸네요
현재 보유하고 있는 다육이중 최고가 입니다. 가격은 글쎄요? ㅎㅎㅎ
이름은 "골드마리아철화"
대충 보면 송충이처럼 생기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동충하초처럼 생기기도 한것 처럼 보여요 ㅎ
금요일 저녁 아들이 버스에 올랐다는 전화를 받고나니 잠시 후 형이 전화를 한다.
“아범아! 내일 일찍 온나, 오늘 아침에 완전 대물을 8방이나 터자붓다, 잡어들 성화가 너무 심하니 올 때 멍게좀 사온나~”
후다닥 체육복 차림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삼천포 시내로 달렸다. 양동이 하나 들고 슬러퍼 차림으로 어시장을 기웃거려 봤으나 늦은 시간에다 황금연휴까지 겹쳐서 그런지 어시장쪽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고 내가 찾는 멍게는 이미 동이 났었다.
어라~ 횟집에 가서 사는 수 밖에 도리가 없어 횟집 멍게를 물어보니 가격이 장난 아니다. 자연산 멍게는 4개에 만원, 양식산은 7개에 만원.
미끼용이다 싶어 양식산을 샀는데도 제법 견적이 나온다. 바닷물 한 양동이 가득 넣어 집으로 와서 혹시나 상할까 싶어 기포기를 털어 놓고 낚시 채비를 마치고 나니 아들이 도착한다.
새벽 2시 40분쯤 출발할테니 일찍 자둬라 하니 원래 잠이 많은 아들 일찍 잠자리에 든다
난 12시가 넘는걸 보고 잠들었으니 기것 2시간 남짓 잤을까?
역시나 2시 30분에 셋팅해둔 알람보다 먼저 깬다

탑포 해안가 가로등이 환하게 새벽을 밝히고 있더군요
저 등 아래서 연인들이 나란히 손이라도 잡고 거닐면 참 이쁜 꿈이 영글겠구나 하는 생각이......,
준비해둔 멍게만 옮겨 실고는 그대로 출발이다.
그런데 창가에 스치는 바람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에공~
가면서 이제 새내기가 된 아들의 학교생활이며 미팅 했던 이야기까지 나누면서 몇일전 낚은 5짜 감성돔 사진을 보여주며 오늘 적어도 이 녀석급 정도는 낚을 수 있을끼다~ 대신 요 녀석 두어수 낚으면 반드시 한 수는 방생을 하자~ 아빠가 저번에 방생을 못해서 참 미안터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다.
4시 15분 이미 형은 출조 준비를 마치고 있었고 옆에 다른 조사님이 있어 물어보니 전날 대물을 터트려 하루 더 낚시하고 가겠다고 집에도 가지 않았다는 부산분이란다.

출항전 낚시배에서 탑포 해안가 가로등을 보며 한컷 했는데
바람이 영 거슬리네요~
에고고~~~
배에 짐을 옮긴후에도 형은 출항 신고를 안하고 있길래 “형! 출발안하나?”, “응 조사님 몇분 더 오실꺼다~”, 형은 연신 길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윽고 세사람이 배에 오르며 “늦었습니다~” 한다. 난 “괜 찮습니다~”로 응수를 하며 “자녀분도 동행을 하셨네예~” 하려다가 자세히 보니 헉~ 여자분인데 체구가 아담하여 꼭 자녀분으로 착각을 하여 실례를 할뻔했다 ㅎㅎㅎ

부푼 희망을 안고 열심히 새벽을 달리는 낚시배
밤을 밝히는 항해등처럼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희망같은 등불이 높이높이 솟았음 좋겠네요. <?xml:namespace prefix = "o" />
설레임을 안고 목적지에 도착
서둘러 배를 고정하고 아들 채비를 꾸렸다.
아직은 서툰 흘림낚시인지라 원줄 3.0호, 수심은 10m권 내외이나 거센 바람에 대비하여 **막대찌 2.0호, 수중찌 2.0호, 목줄 2.0호 약1.5m, 감성돔 바늘 4호, 바람에 의한 영향을 덜 받게 바늘 50cm 위에 두툼한 3B 봉돌 하나로 마무리를 하여 큼지막한 크릴 한 마리 끼워 바다에 담구더니 아들 새 낚시대며 새 릴에 새 원줄까지 기분이 좋은지 약간은 흥분된 모습이다.

아들 열심히 낚시중입니다.
새 낚시대에 새 릴에 새 원줄에 ㅎㅎㅎ 왕창 부럽습니다.
다음엔 새 라이프자켓이라도 하나 선물하여야겠어요
내가 입던거 물려줬는데 새 기분이라도 좀 더 나게요
그날 저 낚시대가 휘어질 정도의 당찬 손맛을 기대했는데......,
나는 여유롭게 준비를 해본다. 조류의 흐름이 워낙 없고 인근에 낚시배가 10여척이 넘어 입질이 미약할것으로 판단이 되어 원줄 2.5호(이건 어지간해서 바뀌지 않을 듯, 한 1년쯤 지나 원줄 교체시나 바뀔 듯 ㅎㅎㅎ), **막대찌 1.5호, 수중찌 1.5호, 목줄 1.5호 약1.7m, 감성돔 바늘 3호, 조개봉돌 B봉돌로 마감을 하고 유난히 이쁜 크릴를 골라 넣어보니 바람에 찌가 살짝 드러눕는다.
옆 조사님들은 이미 낚시대를 드리웠고 어제 대물 입질을 몇 번 터트렸다는 조사님은 뒤쪽 선장옆에 자리를 잡아 열심히 내공을 발휘중이다.
난 아들 곁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낚시중이었고, 그때가 아직은 파릇파릇한 새벽 5시를 조금 넘어서는 시간이었다.

형 옆에 붙어서 조잘조잘 재잘재잘
오늘의 조황을 미리 그려보며 즐겁기만 합니다.
새로 업그레이드한 해양네비라는데 가운데 네모모양들이 있어 뭐냐고 물어봤더니
양식장이랍니다.
밤에 앞도 안보이는 연안 항해할 때 참 요긴하겠다 싶네요.
형 말에 의하면 어제는 5시에 출항을 해서 도착하자마자 소나기 입질을 받았다길래 금방이라도 아들 낚시대가 바다로 꼬꾸라질 것 같은 느낌이 왔었는데......, 옆 조사님들의 몇 번의 헛챔질 속에서도 바다는 바람이 물결만 일으키고 있었고 낚시대는 아직은 잠속에서 깨어날줄 모른다.

아침햇살이 간밤 숙취에 못 깨어나는 듯 영 힘이 없더군요
차가워진 수온 힘없는 햇살 그리고 바람까지 ㅎㅎㅎ
삼종세트가 도와주지 않네요
근처에 10여척이 넘던 낚시배가 하나 둘 자리를 뜨고 부지런한 아침해는 산등성이를 단숨에 뛰어 올랐으나 흐릿한 날씨에 맥을 제대로 못추는 듯 차갑기만 하고 바다엔 바람만 신바람부르스를 치는데 조류는 꼼짝도 안하고~~~
어라~ 이러면 큰일인데~
형은 날씨가 싸늘하다며 커피를 준비하고~ 그런데 종이컵을 안 챙겨 왔다는 것이다. 선실에 컵을 쌓아놓고 사용했는데 그만 바닥이 난줄 몰랐다는 것이다 ㅋㅋㅋ
라면 먹을 때 먹던 큰 대접에 커피를 따라 마시니 그 맛이 또한 일품이다 ㅎㅎㅎ

참으로 맛난 커피입니다
대접에 탄 커피들 드셔보셨는지요?
그저 황송해서 양손으로 받쳐들고 막걸리 마시듯 원샷 했습니다 ㅎㅎㅎ
옆으로 살짝 드러누운 찌는 미동도 않는데 물속에서는 망상어떼들의 전쟁이 일어났는지 크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형은 “잡어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네~ 이럴땐 특효약 멍게가 제일이야~”하며 멍게를 모양도 이쁘게 썰어낸다.
난 그중에 한 마리 꺼집어 올리며 “꼭 갈치 낚시할 때 장어 썰어 미끼 하는 느낌이네~”하며 끼워서 물속에 담궈보지만 역시나 찌는 아주 조금씩 움직이기만 할뿐 덜컥~ 하는 입질은 없다.
아들은 열심히 열심히 정말 열심히다.
여 조사님도 낚시대를 휘두르는 폼이 경력이 있어 보이는데 입질은 없고 안달이 난 나는 앞으로 옆으로 뒤로 가서 형 옆에 붙어 낚시도 해보지만 역시나 입질은 없고 ㅋㅋㅋ
급기야 지친 나는 선실에 들어가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슬렁어슬렁 나와서 아들 곁에 붙어서서 낚시대를 담그며 “누가 한 수 했나?”하니 아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아들 낚시대와 나란히 나란히~
수심도 똑 같이 해서 누가 먼저 입질을 받나 했는데 결국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네요
다음에는 근사한 타이틀이라도 걸어야겠어요
무슨 타이틀이 좋을지 다음 출조길에 아들과 의논이라도 해봐야 할듯요~
형은 이미 밑밥 한통이 넘치도록 준비해온걸 다 쏟아 붓고 두 번째 밑밥통을 반통이나 밀어넣고 있었다.
그 사이 주위의 배들은 다 이동을 하고 두척인가만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고......,
지친 아들이 낚시대를 거치해 놓고 앉아 있더니 졸고 있어 선실에 들어가라고 했더니 들어가 그대로 잠이 들었는지 고요하다.
느린 시간이 꼼짝도 안하는 조류처럼 더디게 흐르고 사람들의 동작도 표정도 마음마져 지치는 것 같아 “형! 자리 옮겨보자~”, “이런날은 어디를 가도 입질이 없을끼다~ 그동안 내가 이 일대를 탐색 안해본 곳이 없다 그나마 여기가 최고로 조과를 보장하는 자리다~ 함 믿어봐라”. 형의 그 뚝심과 자신감 찬 표정이 꼭 대물이 낚시대를 끌고 갈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양식산 멍게로 자연산 멍게를 낚았네요 그것도 4종 세트로
멍게 + 돌멍게 + 미더덕 + 홍합
요넘들을 이쁘게 썰고 까서 미끼로 사용을 해봤습니다마는 역시나 입질은 없었어요
이날은 감성돔 언니야 오빠야들이 무슨 먹이를 먹었을까요? 참 궁금도 합니다.
라면을 끓여 내오니 같이 온 일행 세분은 요술박스에서 뭔가를 계속 꺼내 드시더만 손사레를 치길래 “선상에서 먹는 라면은 맛납니더~ 함 드시보이소~”하며 권하였는데도 배부르다며 캔 맥주 하나 꺼내주길래 사발에다 반만 따라 먹고 캔은 뒤에서 낚시하던 분에게 권하니 한모금 마신다.
다른 때 같으면 선상표 라면이 맛있었는데 오늘은 도통 입맛이 없어 일찍 젓가락을 놓고야 말았다.
식사후 옆으로 배를 옮기며 또 뭔가가 될 것 희망에 열심히 낚시대를 담궈보지만 뜨거워진 햇살 만큼이나 마음만 달궈지고 역시나 입질은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겉옷만 벗어제끼고 말았다.
그 사이 뒤에서 낚시 하던 조사님 아주 강한 허리휨이 낚시대에 전해지더니 잠시의 릴링후 허공을 가르는 띵~ 가득이나 부러웠던 시선이 허무한 시선으로 바뀌고......,

다른때는 참 라면이 맛나고도 또 맛났었는데 이날은 영 입맛이~
ㅎㅎㅎ 그래도 찬조해준 캔맥주 한모금 들이키고 나니 금방 기분이 업되고 말았네요
맥주 안주에 형수가 담아준 김치를 손으로 덥썩 집어 먹었더니 입안 가득 고운 향이 진동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형 옆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니 입질이 없어 난리라며 형 입술을 바짝바짝 타 들어가고 “이 일을 우짜모 좋노~”, “어제는 대물들 입질이 목줄이 터지고 난리였다며~”로 응수를 하고 형은 “바다가 하는 일을 내가 우짜것노~” 하며 물병을 끌어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난 그냥 선실로 들어가 또 드러눕고 말았다.
쿵쾅쿵쾅 인근 배 지나가며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도 들리고~ 난 점점 꿈속으로 빠져 들고~
얼마쯤 잤을까 싶어 부스스 일어나 다시금 나와서 미끼를 갈아 끼우며 심기일전해보지만 여전히 입질은 없고.......,

아들의 체력이 고갈이 난듯~
철수길에서 열심히 졸고있네요
집으로 오는 차에서도 예전 같으면 피곤하면 바로 잠들었을텐데 이제는 성인이 되어 가는지 꾸벅꾸벅 졸면서도 운전하는 아빠가 걱정이 되는지 계속 잠을 쫒고 있더군요
인근으로 배를 이동하자 이번에는 조류의 흐름이 아장아장 걷는 아가 걸음처럼 금방이라도 감생이가 물어줄것만 같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흘려보지만 더 이상의 입질은 없다.
형이 밑밥 세통을 쏟아부었지만 야속한 감생이는 끝끝내 응답을 하지 않았고 형은 승선한 조사님들에게 미안함과 한숨이 같이 섞인 “이런일은 없었는데~ 1년에 한 두 번 있을까 말까하는 날이 바로 오늘인갑따~”하며 담배 한 개피에 불을 붙이며 언제나 삶의 터전인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도 무료하여 해파리와 숨바꼭질도 해봤네요
요녀석 뱃전으로 오더니 배에 부딪치니 옆으로 잠시 움직여 보더니 계속 장애물이 있자
이번에는 아래로 잠수를 하더군요
단세포인줄 알았는데 나름 생각을 하는 듯 ㅋㅋㅋ
철수를 하면서 나란히 뱃머리에 앉아 아들에게 “오늘 어땠노? 입질 없어서 서운하고 심심했제?”, 하고 물으니 아들 “재미있었는데요~ 바다를 보면서 즐거웠습니다” 녀석 대견한 말을 한다.
정박후 다들 떠나고 형은 부지런히 배를 청소하고 청소가 끝난 형에게 수고했다며 조만간 다시 오겠다니 아들 손을 꼬옥 잡더니 만나서 반가웠다고 얼굴에 밝은 미소가 흐른다.
충무대교쯤 넘어서자 길들이 막히길 시작하고 아들은 살짝살짝 눈이 감기고 있어 의자를 뒤로 젖히고 편히 자라고 하니 그때서야 깊은 꿈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1시간을 더 달려 집에 도착해서
아들!
“월요일 새벽 함더 뛰까?”
“일요일 조황 보고 좋으면요~” 한다.
아들의 낚시대가 포물선을 그리는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어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공존을 한다.

앞 조행기에서 언급했던 이팝나무입니다.
아들에게도 이 나무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해주며 춥고 배고프던 그 아픈 시절 우리네 조상님네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전달해주고 싶었는데 글쎄요~
작은 쌀 한포대 값이 피자 한판값보다 못한 세상인데 요즘 젊은 청소년들이 느끼는 물질의 풍요속에 옛 어른들의 배 고픔은 어떻게 각인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