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심도(只心島)가 어디메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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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심도(只心島)가 어디메던고..???

G 15 3,450 2002.04.02 16:48

20년 후 뱅쿠버섬의 뱀필드에 다시 모인 "우리들", 1999년 여름....
왼쪽부터 쏨팽이, 하나 건너 분타케, 흑주귀, 오른쪽 끝이 지렁이..




"모닥불" - 박 인희


그해 봄의 정정은 유난히 시끄러웠고, 우리도 최루가스 깨나 들이마시면서 학교를 다니느라

공부보다는 그저 한 건수 없나 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면서 청춘을 뭉개고 있었던 그런

어수선한 시절이었다. 학교는 가는둥 마는둥, 선생님들도 별로 신경을 쓰시는 눈치들이

아니었고, 그저 "야, 사고치지 마라... 우리 꼰대들 머리 아프고 너네 청춘들 조진다.."

이런 식이라, 우리 일당들은 어떻게 미팅 한 껀수 안걸리나~ 하고 담배연기 자욱한 학교 앞

다방에서 쓴 커피 한잔에 서너시간씩 죽치면서 궁리하다가 당구장에서 짜장면 내기로 저녁

때우고 내 자취방에 모여 오징어다리에 새우깡, 쓴 쐬주 한 곱뿌씩 앞에 놓고 하잘데기 없는

시국 얘기로 밤을 꼴딱 새워가며 떠들어 대던, 딱히 별로 즐거운 일도 없었고 희망에 부풀어

청춘을 설계하는 그런 건실한 시절도 아닌,,, 옅은 회색빛의 따분한 청춘을 죽이고 있었다.


이러구러 남해안에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일기예보가 간간히 들리던 유월 하순, 갑작스레 학교

벽에 나 붙은 광고에는 "올해 여름방학은 졸지에 빨리 시작합니다,,, 이유는 묻지마세요..!!"

요런 요상한(?) 내용이 있었고, 따라서 전국의 대학교는 조기(?)방학에 들어갔고, 지미 카터는

길거리에서 최루탄을 쏘아대는 전경부대들을 보지 않고 박통과 단독대좌에 성공하였고....

우리 일당들에게는 그저 방학이 일찍 시작되어 좋은, 그런 일이었다... 우리가 뭐, 열렬

운동권도 아니니 "쌔끼들, 데모 할까봐 치사하게 방학을 일찍해..??" 하며 비분강개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거다. 근데, 갑자기 생겨난 이 시간을 무엇에 쓴다..??? 모여서 구수회의 끝에

결론을 내린 것이 "지심도" 라는 거제도 밑에 붙은 콩알만한 섬으로 가보자였다. 물론 이

지명을 끌어낸 것은 나였고, 일당들은 군말없이 그러기로 했고.... 당장 종로 2가의 삼양라면

본사 건너편에 있던 중앙지도문화사에 가서 50000:1 지도를 사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어디든 우리발로 가서 직접 눈으로 본다" 하는 한국판 "Wander Fogel - 철새" 처럼

시간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떠돌아다니는 것이 벌써 두어해째 되는 우리 팀이라 바로

그 다음날로 부산행 야간보통급행에 몸을 싣고 남으로, 남으로 달렸다... "우리"는 내 중학

동창인 그림쟁이 "쏨팽이", 쏨팽이의 국민학교 동창인 "흑주귀", 내 고등학교 동창인 "분타케",

이렇게 4총사.... 전부 다니는 학교와 전공은 달라도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하며 죽고 못살던,,,

그런 "친구들" 이였는데, 우린 그렇게 뱃장이 잘 맞을 수 없었다...


근데 하필이면 왜 "지심도"?? 대축척 대한민국 지도를 놓고 들여다 보다가 대충 동남쪽 끝에

붙어있는 듯 싶어서,,, 였던 것 같다. 가는 길에 부산 구경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거제도

해금강도 볼 수 있을 듯 싶고.... 나 빼고는 부산 구경 못해본 서울"촌놈"들이라 두말없이

결정이 났는데.... 내 계산으론 여름 참돔(말로만 듣던...) 손맛도 볼 수 있을 듯 싶어서

꼬신 것이고, 놈들은 군소리 없이 "좋은 생각이야..!!" 하며 맞장구를 치고 그렇게 되었다..


아침에 내린 항도 부산은 우리 서울촌놈들에겐 신기한, 마치 이국에 온 듯한 인상을 주었던 것

같다... 흐린 날씨에 습기가 많은 짠바람은 우리를 들뜨게 하고... 부산역 앞에서 재첩해장국

으로 요기를 하고 우린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갔다... 그 많은 짐을 다 들고, 메고서... 각자의

배낭에는 몇끼 먹을 주부식과 취사 및 숙영장구... 한놈은 통기타를 들었고, 내 어깨엔 낚싯대

가방이, 또 한놈은 쿨러, 환쟁이놈은 그 와중에도 숙제꺼리인 "작품"을 해야 한답시고 이젤과

화구통까지 들고서... 짚시도 이런 거지집단 짚시가 없었을 것이다... 용두산 공원 수족관에서

물고기 구경도 하고, 부산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도 박고... 점심때가 되어서 공원밑으로

내려오니 골목에서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코를 따라 들어가니 "고갈비"집이 여러군데...

맛있는 고갈비에 백반으로 점심을 때우고 낚싯방에 들러 미끼로 쓸 갯지렁이와 새우를 구한

뒤 우린 거제도로 가는 객선부두에서 장승포행 훼리에 올라탔다.. 두시간 정도 걸리는 뱃길이

었던듯 한데, 바다경치를 보며 가니 금방이다.. 장승포에 내려서 지심도 가는 배편을 물어보니

하루에 두번인가 조그만 도선이 다닌단다... 도선이 있는 곳을 찾아가니 마침 나이드신 사공이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공 만큼이나 낡은 목선에 올라타고 기다리니 사공할아버지가 "기관"

을 시동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이 "기관"이라는 것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단기통

디젤기관인데, 커다란 플라이윌이 달려있고 종 모양의 엔진헤드는 기름때로 시커멓다... 근데,

사공할아버지가 연장통에서 꺼내 들어올리시는 것은 커다란 "권총" 한자루.... 우린 "해적"을

만난 것이 아닌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에 서로 얼굴들만 보고 있는데, 그 "권총"에 엽총탄 같은

"총알"을 끼우시더니 엔진헤드에 있는 구멍에 총구를 끼우고는 "꽝!" 하고 쏘아버리신다...

곧바로 서서히 돌기 시작하는 플라이윌을 따라 기관이 "펑!"하며 흰 연기를 배기공으로 내 뿜는다..

펑, 펑, 펑, 펑,,,, 점점 빨라져가는 기관의 폭음을 들으며 우린 고만 신나게 박수를 쳐 댔다...

사공할아버지는 그런 우릴 웃으며 쳐다보신다.. "젊은이들, 지심도엔 어찌가누..?" "예, 구경두

하고 낚시두 하려고요..." 우린 이것 저것 기관에 대해 여쭙기도 하고, 어디메 쯤이 고기가 잘

잡히는지도 여쭙고, 이러면서 펼쳐지는 바닷경치에 취해 금새 지심도에 닿았다... 정말 조그만

예쁜 섬이었다... 바닷가의 절벽 위로 짙푸른 상록의 난대성 수목이 우거졌고, 가운데 쯤은 마치

말잔등 처럼 평평하게 내려 앉아 개간이 되어 고구마, 콩 등의 밭작물들이 자라고... 지도를

보고 연구했던 대로 섬의 남동쪽으로 내려갔다.. 바닷가는 발씨가 좋은 갯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를 보며 바로 낚싯대를 편다.. 저녁거리를 잡아야지... 그때 당시 낚시는 원투, 아니면 민장대...

우린 원투대를 두대 펴고 민장대 두대로 바닷가에 섯다... 원투대에 이어지는 입질들... 씨알 좋은

노래미가 줄줄이 올라온다... 민장대에도 가지메기 굵은 것들이 물고 늘어지고, 큰놈은 거의 40

센티이상이다, 오메 좋은 것..!! 버너를 꺼내 밥을 하고, 회를 썰고 매운탕도 끓여 잘 먹었다...

물론 서울서부터 지고온 "진로"도 몇병 넘어뜨리고... 어두워진 후 다시 낚시를 시작했는데,

이번엔 볼락낚시... 랜턴을 켜서 물에 비치니 검은 고기 그림자가 밑에 비친다... 놈들에게

볼락낚시 시범을 보이고 (나두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낚시춘추와 낚시책등을 통해 얻어들은 것을

잘 써먹은 셈이다...) 난 다시 원투대를 휘둘렀다... 30분만에 입질이 있었다... 끌어올리니

예쁜 상사리... 그 깊은 주황-분홍색의 몸에 별처럼 빛나는 작은 푸른 점들.... 정말 예쁘다,

잡아도 되려나 싶을 정도로... 낚시인생에 첫 볼락이요, 첫 참돔과의 만남이었다... 쿨러에

가득 손바닥 크기의 볼락을 채우고 여러마리의 30센티가 넘는 상사리들과 굵직한 가지메기들로

위를 덮으니 최고의 기분이다... 지미 카터가 왔던지 말던지, 박통이 긴급조치를 하던지 말던지,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고..?? 열한시쯤 대를 거두고 볼락을 굽고 가지메기 회를 쳐서 두꺼비를

잡는다... 분타케의 통기타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저별은 나의별... 별이야기... 아침

이슬... 밤배... 길가에 앉아서... 고래사냥... 모닥불.......


밤은 깊어가고... 우리는 젊음을 노래하고... 두꺼비는 쓰러지고... 이러다가 침낭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에 선잠을 깨니, 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솔솔불던 갯바람도 멈추고, 짙은 어둠 속에 바닷비가 내린다... 침낭을 걷고 짐을 챙겨 판쵸로

덮은뒤 우리도 하나 남은 판쵸를 같이 뒤집어쓰고 갯바위에 앉아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근데... 불청객이 있었다... 모기군단(!)의 공습..!! 바람이 자면서 달콤한 젊은 피의 냄새를

맡고 모여든 모기떼... 빗속에 모기향은 꺼져버렸고, 요즘같이 바르는 모기약 같은 것은 듣도

보도 못했던 시절이라 꼼짝없이 달려드는 모기군단에게 몸뚱이를 내 맏기는 수 밖에!!! 정말

인정사정없이 쏘아댄다... 이눔의 모기들은 청바지도 뚫네..!! 잠시 꾸벅 졸면 영락없이 눈텡이,

입술,,, 요런 취약지구만을 골라서 쏜다... 날이 밝아올쯤 비가 그치고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

하면서 모기들은 사라졌다... 퉁퉁 부은 우리들의 얼굴을 전리품으로 남기고.... 서로 얼굴을

쳐다 보면서 긁어가며 우린 웃어댔다... 야, 네 눈텡이는 왜 그모양이냐..?? 그러는 네놈

입술은 어떻고..?? 볼따구, 마빡도 사정없이 쏘여 꼭 여드름이 만발한 고삐리 같은 화상들이고...


아침에 몇 마리의 상사리와 가지메기를 더 낚은뒤 우린 다시 그 낡은 도선을 타고 장승포를 거쳐

부산으로 돌아왔다... 자갈치 시장에서 기웃기웃 구경을 한 후 길가 좌판의 맘 좋은 아줌마에게서

삶은 고래고기를 한 봉지 샀다.. 기차간에서 먹을 안주거리로.... 그 사박사박하고 고소한 것을

양념소금에 찍어 먹은 맛은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밤새 경부선을 북행하면서 우린 시체처럼 늘어져 잤다...

모기에 물려 부은 얼굴과 팔다리들을 긁어가면서...

정겨운 남도의 풍광을 기억 속에 저장하면서...



.... 우리 청춘의 한때는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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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댓글
G 어촌계장 01-11-30 00:00
지심도엔 지금 동백꽃이 절정을 지나 낙화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봄도다리, 숭어, 노래미가 살이 오르고... [04/02-17:44]
G 뽈라구 01-11-30 00:00
흐 흐 흐.....
형님!!!
이곳이 참으로 그립겠습니다.
지나간 날들의 추억을 더듬으시려면 조만간 한번
들어 오셔야 할듯합니다.......
.
재미 있게 잘 읽었고.
앞으로도 많은 글 부탁 드립니다.^^*
[04/02-18:01]
G 마린 01-11-30 00:00
87년에 지도 지심도에서 비슷한 밤을 보낸적이 있습니다...그때는 낚시보다는 술로 밤을 지새웠지요...선착장에서 해녀가 바로 잡아서 팔던 멍게맛을 잊을 수 없어요..........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04/02-18:08]
G 방어진 01-11-30 00:00
89년 여름이었을겁니다. 3평남짓 민박집방에 모기향두개를 다피워도 살
아남았던 지심도 독한 모기들... 화장실구멍이 많이 커서 불안하게 일을
보았던 그 민박집. 물망상어를 수도없이 잡고 밑밥용으로 가져간 홍합을
삶아서 소주를 마시고 평상에 누우면 눈앞에 가득하던 수많은 별들.......
유난히 기억에 남는 여행지였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04/02-19:56]
아~~ 좋은 글입니다. 뱀필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지심도를 더 먼저 가보고 싶어집니다. [04/02-22:10]
아~~ 좋은 글입니다. 뱀필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지심도를 더 먼저 가보고 싶어집니다. [04/03-00:53]
G 흑주귀 01-11-30 00:00
나 그당시의 흑주귀...지금은 머리가 희어지고 있는 백주귀.... [04/03-13:16]
G 흑주귀.. 01-11-30 00:00
마자 마자,,,그때는 그랬지..그때가 70년대 후반이었던가...어쩐가..
이제는 머리가 반백으로 희어가고 있구...그때 팔팔했든 20대 청년은 어
데로 가고 40대 똥배 나온 중년 아자씨가 추억에 잠겨 있는감?
증말루 세월이 이처럼 빠르다니어디 믿을수 있는감?
지심도 ,,,,다시 한번 가보구 싶은곳...
지심도의 언덕받이에 있던 조그만 운동장과 6줄 놓여 있던 그 쪼끄만
국민핵교 가 생각 나는군.
그때 그곳의 분교 부부 선생님들이 아직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실까?
참으로 정겨운 곳 추억에 남는곳 이었는디..근디 그때 찍었
G 흑주귀.. 01-11-30 00:00
던 사진은 모두 어데로 갔당까? 고래 고기 하니깐 생각 나는구먼... 지칠
대로 지쳐 잠에 골아 떨어져 창가에 남겨두었던 고래 고기와 쐬주를 그
때 이몸이 주섬 주섬모아서 서울에 도착 하자 마자 버렸던 기억 이 말여..
아고 아고 ㅏㅏ 아깝붜라 증말 ,,지그,ㅁ 있음 한잔쭉 할틴디...
밴쿠버에는 killer whale 이 많으니 한번 먹으로 내려 가마 그럼..그대신
잡는것은 네 책임 이고 말야..그넘을 잡으렴 채비가 단단 해야 할틴디..
아라서 할것 이여....2002/4/3/ [04/03-13:38]
G 부시리 01-11-30 00:00
또 부럽네요! : 지렁이님의 글을 읽을때마다 느끼는건 참! 색다르다, 또 먼곳에 계시면서도 이곳에 참으로 많은 지우들이 계시는구나 라고 생각 하니 참으로 행복한 싸나이 같네요! [04/03-18:13]
G 부시리 01-11-30 00:00
에공 중간 내용이 다 날아가 버렸네,수정을 하려도 네 비밀 번호가 자꾸 틀리다는데,혹 운영자님께서 보시면 저의 비밀 번호좀 확인해 주시면 캄샤 하곗습니당! [04/03-18:17]
G 다대포빨간모자 01-11-30 00:00
知心島! 나 그대 마음 알리니! 지심도 내항 마을 공이장님! 언제나 마음보다 더 뜨거운 섬 사나이의 큰마음크 인정이 있던 그 곳, [04/05-02:03]
G 다대포빨간모자 01-11-30 00:00
知心島! 나 그대 마음 알리니! 지심도 내항 마을 공이장님! 언제나 마음보다 더 뜨거운 섬 사나이의 큰 인정이 있던 그 곳. 그 떄 그 시절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않았던 친구들이 그리운밤, 지심도의 크리스마스 이브날의 밤이 그리워서 춘삼워 호시절에 렁이님의 글에 빈바음을 띄웁니다. 이 글보시는 님들 언제나 다복하시고 소원성취하소서! [04/05-02:06]
G BOLLARD 01-11-30 00:00
좋은 글입니다. 평상에 앉아 대나무를 타고 흐르는 바람소리들으며 소주한잔하던 추억이 생각나네요. [04/05-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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