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비, 축축한 여름을 보내며...
김일석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 모를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다보니
늘 바다 곁을 어슬렁거리기만 할 뿐
낚싯대를 들고 갯바위에 서본 지가 꽤나 오래 되었다.
최악의 실물경기 속에서 조구업계의 전반적인 어려움도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온 몸으로 숱한 업무와 싸워야 하는 책임 또한 만만찮게 무겁다.
게다가 매주 마다 벌어지는 수강생들과의 신경전과
그나마 좀 잘 가르쳐보겠다는 특유의 준비작업도 날 팍팍하게 하고,
명절이 코앞이니 또 출판 일정이 바뀌어
다달이 계속해온 막판 글쓰기는 난데없는 생리주기변화로 내 머리를 아프게 한다.
또 무슨 방송에 내보낼 거라는 촬영 제안을 받아놓고보니
내 어지러운 일상은 더욱 긴장감이 더하고,
과연 "역사발전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초라한 내 삶의 혼미함이란...
적당히 괜찮은 머리로 이 복잡한 세상
그저 적당히 사는데 익숙한 나의 고등어 같은 기억력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비가 계속해서 내리기 시작한 지가 두달이 넘는 것 같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하는 날도 물론 없진 않았지만
여름이 다 끝나도록 이렇게 지루하게 계속 내리는 비는 정말 처음인가 싶다.
뜨거운 여름에 한 몫 봐서 일년을 먹고 살아야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올 여름장사가 울상이 아니었겠나 싶고...
지난 두달 동안 새로이 맡은 업무 때문에 전국을 다 돌아다녔는데
늘 퍼붓는 빗속을 달렸던 기억 뿐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위험한 경우도 몇번 겪기도 했고
피곤에 지쳐 길 가에 차를 세우고는 드러누워
차 천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제법 운치있게(?) 깊은 잠에 곯아 떨어진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여름이란 것이 강한 햇볕이 며칠 내리 쬐어야
벼도 익고 고추도 익고 세상만물이 무르익는 법인데
올 여름은 늘 축축하게 습기를 머금고 있으니
농사는 제대로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연례행사처럼 치루어온
마을이 고립되고 재산이 다 떠내려가는 걸 볼 만큼 아직 그리 큰 홍수가 없었고
지붕이 날아갈 듯한 강한 태풍도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아직 다 지난 건 아니지만 부디 올 해엔 태풍으로 인해 도탄에 빠진 민생을 보지 않고 지났으면 한다.
아무튼 올 여름은 가장으로써 가족과 함께 제대로 된 물놀이도 한번 못가보고,
아니면 난바다 직벽 틈바구니에 텐트 치고 밥 해 먹어가며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하루 이틀 화끈한 여름낚시에 빠져보지도 못했다.
하다못해 풍광 좋은 호숫가나 방파제에 벗들과 둘러앉아
고즈넉하게 삶을 이야기 하며 살가운 우정을 나누어 볼 시간도 갖지 못했으니
낚시꾼으로써 올 해 여름은 유난히 축축하게 보낸 것 같아 새삼 섭섭하다.
그렇다고 벗들과 어울려 흥청망청 깡소주에, 폭탄주에,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처절한 하룻밤을 보낸 기억도 없으니 또 섭섭하고
그저 적당히 바쁘게 하나씩의 일감에 매이다보니 여름이 다 가버려 또 섭섭하고...
이렇게 낚시에 시들시들해서야 내가 참 낚시꾼이라고 할 수가 없다.
촬영한답시고 여수 앞바다에 잠깐 다녀온 것 말고는
고작해야 동네낚시터 두어번 들락거린 게 최근 내 낚시의 전부이니,
이러다 바늘 매는 것도 까먹지 않을려나 모르겠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산들바람이 불고
팬티만 입고 자다간 감기 걸리기 딱 좋은 가을의 문턱.
끈적끈적한 무더위가 가시면서
어디든지 낚시를 한번 그럴듯 하게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일에 치여 잘 될 지 알 수가 없다.
내만권에야 이미 곳곳에서 초가을 감성돔 낚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동네낚시는 동네낚시대로 잔챙이 벵에돔을 비롯하여 전갱이, 고등어 같은 잡어낚시 재미가 짭짤하다.
원도권의 먼 갯바위엔
전형적인 여름어종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연중 최고의 계절이지만,
경기가 너무 안좋으니 멀리 나가는 출조인구가 많이 줄었고
출조점도 억지로 멀리 나가봐야 여간해서 수지가 안맞는 데다
주말마다 비가 퍼부어대니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 들고...
낚시꾼들도 갈수록 손맛 보기가 쉽질 않으니
이래저래 모두가 어렵기만 한 세월이다.
이번 시즌엔 다들 조금씩 명랑해지고 형편이 나아져야할텐데 말이다.
photo...김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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