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18일 금요일저녁 20시 통영의 낚시선은 기상악화로 출항을 못한단다. 먼바다는 풍속 14~18m/sec, 파고 2~4m 욕지도 아랫쪽은 너울파도가 장난이 아니랜다. 7월 들어 첫 출조날 얼마나 기다렸는데...... 7월 19일 새벽 3시엔 출항계획은 있지만 장담은 못한단다. 그렇다고 집에 있자니 좀이 쑤셔오니 미치겠다. 근엄한 목소리로 마누라에게 선전포고를 내렸다. "낚시갔다 올께!" 상냥하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언제 갔다, 언제 오는데요?" 여기서 순진하게 지면 안된다. 또한 낚시시간은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으응, 지금 가서 일요일 저녁에!" 마누라가 눈을 흘기며 "얼씨구! 이제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한다 이땐 순간의 재치가 필요하다. "그으래! 참기름하고 소금 좀 가져와! 생간 한 번 먹어보자! 얘들도 오라 그래!" 마누라가 피식 웃으며 "하여간 ! 으이구 왠수야!" 문득 형수뻘 되는 분의 얘기가 생각난다. "신랑놈이 하나니까 같이 살지, 두 놈만 되어도 때려치웠을게다" 행여 나도 저런소리 듣는거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계산된 나의 낚시일정은 늘 나의 승리로 끝난다. 설령 일요일 아침이나 정오쯤같이 중간에 돌아오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낚시갈땐 돌아오는 시간이 일요일 저녁이라고 못박아 놔야한다. 일요일 점심때라고 해놓고 일요일 오후 3~4시쯤 돌아오면 시끄러워서 쉬기는 힘들다. 하지만 중간에 돌아와서 "여보! 당신이 보고잡아 빨리 왔다!" 하면 입술이 귀밑에 걸리면서 좋아서 뒤로 자빠진다. 행여 늦더라도 저무는 휴일저녁 잔소리 양도 줄어든다. 옛말에 "미친 년과 바람도 밤이 되면 잔다지만 잔소리도 줄어드는 것을 낚시인이 아니면 어떻게 알리! 나만의 진리이며, 마누라 대처법이니 님들은 흉내내면 안된다.
자주 가는 낚시점에 들러 소모품과 밑밥을 챙기고 통영으로 향했다. 통영에 있는 낚시점에 들러보니 일기가 주의보 상황이라 손님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점주도 방파제 앞에 앉아 가지메기, 볼락 낚는다고 대를 들고 서있다. 낚시인의 첫마디 "뭐! 잡았는데? 가지메기 몇마리 했심니다. 외모만큼 넉넉하고 사투 리가 구수한 합천사람이다. "새벽 세시배 뜨나?" "너울이 심해서 욕지밖에 못갑니다." 같이 간 동생 인낚 자기 아이디가 sj900을 달았기에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소주900원"이라는 친구가 한마디 건넨다. "헹님! 사온 김밥에 소주나 한 잔하고 잡시다"한다. 내 속도 모르는 나쁜 넘! 어떻게 잡은 출조날인데.... "하기야 내일 가면 되지" 하는 맘으로 맥주캔 큰거 다섯병에 안주 몇개 사다 놓고 퍼질러 앉았다.
새벽 3시가 다 되어 갈쯤 낚시배 뜨는지 선장에게 전화 한 번 해보랬더니 출항한단다. 아이고 잘 됐다. 낚시인 7명에 선장포함 8명은 국도를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배위에 있었다. 다들 자리잡고 누웠는데 소주900원 동생은 앞선실에 누웠다. 앞선실은 너울이 심해서 뒤로 가라고 해도 고집을 안꺾는다. 하기야 황소고집을 어이 하리. 가다가 속이 메쓰꺼워야 후회하겠지. 그때쯤 난 속으로 "봐라 이눔아 어른말을 들으면 자다가 떡이 생긴다는 말도 못들어 봤느냐! 괘씸한 놈! 고얀지고!" 그럴 것이다.
연대도를 벗어나 오른쪽에 겨우 내부지도가 나타나는데 낚시배는 소형바이킹 수준이다. 앞선실은 텅어엉 텅~하는 소리에 잠도 안오고 속도 메쓰꺼울 건데 고집을 피워서 그런지 잘도 누워 있다. 외부 지도를 벗어나자 너울파도는 정말 3~4m정도 되는것 같다. 마음 한 구석에 후회스러운 기운을 꾸우욱 누르며 선장에게 한마디 했다. "속도를 줄여 너울을 타면서 갑시다" 했더니 속도도 줄이고 창문을 열어 풍향도 살핀다. 이거 이렇게 가는것 아냐? 정말 큰 너울은 국도 조금 못가서 오는데, 여기 벌써 이만한 너울이면 큰일이 아닌가? 하지만 내가 아무리 바닷가 출신이라지만 배를 모는 선장만 할까! 눈도 꿈쩍 않고 히히 웃어 댄다. 천신만고 끝에 국도에 도착했건만 너울파도에 배댈 자리가 없다. 어렵사리 2번 자리에 3명의 낚시인이 내리고 900원짜리 소주 동생이 짐을 올려줬다.
국도 기도원밑 일명 '계단바위"에 하선했다. 올해 국도 10번째 출조에 이 자리는 두번째가 아닌가! 하지만 내릴곳이 마땅잖다. 후회스럽기는 해도 어쩔수 없다.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채비를 던져 보았다. 수심을 이리저리 조절해봐도 어신이 내겐 없는데 동생은 상사리 세마리를 올린다. 속이 쓰리 움을 꾹 참고 있는데 동생이 나의 약점을 꼬집는다. 헹님아! 전유동으로 해야 어신이 온다 카이. 오늘은 기껏 상사리 세마리 해놓고 기가 살았다. "내비둬라, 이리살다 죽을란다.! 결국은 어신이 없다. 쯧쯧..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새벽엔 저멀리 소매물도 등대 서치라이트가 반짝거리더니 이젠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동생녀석이 안보이더니 금새 나타나 밥한다고 쌀을 씻는다. 밥 될려면 한 30분 기다려야 되니 자리를 옮겨 낚시를 해보기로 했다. 건너편 직벽 밑으로 흘리면 분명히 참돔이 있을것 같은데 싶어 직벽 제일 가까운 곳으로 가던중 아니 발밑에 노란뱀이 또아리를 틀고 앉았네! 으윽! 소름이 쫘악 끼치 는데 이 놈은 방울뱀처럼 꼬리를 쳐들었다. 그럼 뱀대가리는 밑으로 숨기고 다가오는 적을 쳐다보고 있단 말인가? 어릴적 풀숲길을 가다 뱀이 길 한가운데 또아리를 틀고 떡 버티고 있는 경우 손을 뒤로 숨기고 쉬이익 쉭 하면서 쫓았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손을 내저으며 쉬이익 쉭 해봐도 꿈쩍도 안한다. 그런데 냄새가 이상타! 이런! 저 눔이 똥 싸놓고 그냥 올라왔네. 그래도 동생이라고 밥한다고 쪼그리 앉았는데 뭐라 할 수 있나! 내가 치워야지. 두레박으로 두 번 퍼부으니 깨끗하다. 나도 참 미련타. 무슨 노란뱀이 있기는 하나? 없지. 있으면 黃蛇가? 잘 안보이면 후래쉬 비춰보면 될 걸 손으로 쉬이익 쉭 이건 또 무슨짓이였나. 후래쉬는 폼으로 가지고 다니는지 한심이.....
19일 토요일 오전은 전형적인 여름 찌는날씨였다. 간간이 바람도 조금 불었지만 더위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동생은 바위 그늘 밑에 누워 자고, 나도 낚시가 안돼 구름다리 그늘에 가서 좀 누웠다. 지난 밤을 하얗게 새워서 그런지 이내 잠이 들었다. 한 삼십분 잤나 싶은데 얼굴이 뜨겁다. 눈을 뜨보니 구름다리 그늘이 옮겨져 얼굴이 햇빛에 드러났던 모양이다. 자리를 옮겨 다시 그늘에 누웠다. 그런데 가슴위로 뭔가 스으윽 지나가는 느낌! 반사적으로 일어나면서 지나가는 것을 잡았다. 속옷 속에 뭔가 잡혔다. 옷을 뒤집어보니 강구벌레. 이놈 크기도 크다. 간이 부은 놈. 감히 어디를 지맘대로 돌아다녀! 이 눔아! 내 가슴은 울 마누라 오른손 이외에는 통행 금지구역이란 말야! 에이 나쁜 놈! 잠이 확 깨네! 이 눔이 내 가슴에 그려놓은 똥글뱅이 속에 x자 표지판을 못 본 모양이다. 미물이기는 하나 초범이고 해서 살려주기로 하고 멀찌감찌 던져주면서 한마다 했다. 한 번 더오면 다리몽뎅이 뿐질러 버린다!
토요일 오후 4시경 어젯밤보다 좋아진 일기때문에 낚시배는 쉴새없이 왔다간다. 그럼 바이킹을 타고 온 우리는 뮛이다냐 왜이리 재수가 없냐! 이제부터 왕재수라 명하노니 낚시 때려 치워뿌까! 하지만 다음에 또오면 돼지 뭐! 이렇게 위로했다. 마음을 고쳐 먹으면 만사형통이다. 어둠이 오자 밤안개가 온 섬을 휘감는데 기분이 으시시하다. 밤 10시나 됐나 싶은데 뒤에서 동생이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다. 저 눔이 미쳤나? 하고 돌아보니 정말 누군가가 와 있다. 옷 색깔은 모르겠고 신발은 하얀 고무신을 신었으며 한 30대 초반쯤 돼보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기도원에 있으며, 바람쐬러 내려와봤다고 했다. 그럴 것이면 인기척이나 좀 하지. 하얀 고무신은 발소리가 없었다. 하기야 파도소리 때문에 듣기야 했겠나. 조금 있다 돌아가는 것을 보고 동생이 내게 왔다. "헹님아! 놀래 죽는줄 알았다. 채비 바꾼다고 후래쉬로 비춰가며 있는데 누군가 옆에 오길래 처음에는 헹님이라 생각하고 앞을 보는데 헹님이 앞에 서서 낚시하고 있는 것을 본 순간 머리카락이 쭈빗 서더 란다.얼른 돌아보니 말을 걸길래 귀신은 아닌것 같고 해서 가슴이 조금 놓이더란다. 속으로 "난 무서워서 그냥 낚시하고 서 있었다. 이눔아!" 히히~
토요일 밤 12시가 넘어서자 안개비, 바람, 전날 피곤함으로 쉬고 싶었다. 동생이 친 2인용 텐트에 살며시 들어가 자고나니 일요일 새벽 4시였다. 다시 채비를 챙겨 던져 보았으나 바다의 미녀는 아는 체도 안한다. 아침 7시 어제 내가 했던 직벽 제일 가까운 자리로 옮겨 보려는데 어제 그 자리에 황사가 똑같이 앉아 있다. 오늘은 놀래지는 않았지만 어제의 그모습과 어떻게 똑같이 생길수가 있나! 신기해서 다시 봐도 영판 황사다. 하기야 같은 공장이니 동일제품이 나오는건 당연하다 싶다. 하지만 저것 때문에 놀랜걸 생각하면 억울도 하다. 이번 출조는 손맛도 못보고 가슴만 서너번 놀랜것으로 마무리 한다.
참고로 국도 동쪽과 남쪽 칼바위 주변에선 마리수 조과와 대물입질도 있었다고 동승한 낚시인이 전하니 조사님들 참고만 하시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