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힌 남도의 풍광에 취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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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힌 남도의 풍광에 취해 ...

G 6 2,687 2003.02.0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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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덮힌 남도의 풍광에 취해 ...




    김일석



    존경하는 선배님의 갑작스런 부친상 소식을 접하곤
    부랴부랴 몇 사람이 옷을 갈아입고 나섰다.
    명절이 코 앞인 데다 눈이 많이 내려
    거의 모든 운송기관이 예약불능상태여서
    하는 수 없이 완행열차를 탔다.



    거의 20여년 만에 타보는 기차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잠이 들만 하면
    "무슨무슨 역입니다, 잊으신 물건없이...."하고 외쳐대는 통에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일 지경이었다.
    어차피 매일 반복하는 안내방송이라면
    부드럽고 듣기 좋게
    연습 좀 해서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책을 펴놓고 읽는 듯한 느낌에다
    60~70년대의 극장 쯤에서나 듣던
    생경스러운 억양이어서 쉬 적응이 되질 않는다.



    더구나 역에 정차할 때마다 문이 열리며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음과 함께 찬 바람이 밀려들어오니
    곤하게 한 숨 자는 일은 물 건너 갔다.
    잠이 들었다깨기를 계속하다가 철길 가로 펼쳐지는
    눈 내리는 시골풍경을 가만히 보고있으니 그나마도 다행인 듯.



    경기도의 작은 소도시 역에 내리니,
    아담한 시가지 풍경이
    날리는 눈발과 함께 제법 운치가 있어보인다.
    어떤 목적으로든
    다른 지방을 구경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인출하는 동료를 보다가
    갑자기 손이 허전하여,
    생각해보니 기차에다 약간의 돈과 신분증이 든
    지갑 대용의 다이어리를 두고 내렸다.
    얼마나 놀랬던지!



    부랴부랴 역에다 신고를 해놓고는 상가가 있는 병원으로 조문을 갔다.
    선배는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한 표정으로 일행을 맞아주신다.
    심한 장애가 있는 아들을 30년 동안 힘들게 키워왔음에도
    변함없이 저렇게 따뜻할 수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식사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우릴 기다리며 배가 고파 혼났다시는 선배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자니 당연한 일일테지만
    참 잘 왔다는 생각이었다.
    조문을 마치고 선배가 미리 준비해 두신
    하행선 기차표를 체크한 후에 역으로 오니
    분실한 다이어리가 돌아와 있다.
    함께 간 일행은
    잘 흘리고(?)다니는 나의 시원찮은 기억력을 비아냥거렸지만
    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다시 다섯시간 여를 달려
    구포 쯤에 내려왔을 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 때문에 갔던 목포에서 눈이 너무 많이 와 오도가도 못하고
    혼자서 청승맞게 소주 한잔 하고 있다고 했다.
    혼자 쓸쓸하겠다 싶어
    "지금 목포로 갈까?" 하고 물었더니 오라고 한다.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마지막 목포행 심야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다시 밤을 꼬박 새워 일곱시간을 달린다.



    자다 깨면 마산, 자다 깨면 순천, 또 자다 깨면 광주...
    비행기를 타고서 떴다 하면 도착하는
    좁디 좋은 땅덩어리가 우리나라인데,
    이렇게 구석구석 다양한 풍광과
    지역 마다의 독특함을 인식하게 되는 것도 여행에서 배우는 것이다.



    "노동의 새벽"을 부르며
    광주역에 내렸던 게 벌써 이십년 전이고,
    동학(東學)의 숨결과 그 저항정신을 더듬으며
    고부와 광주, 나주로 신혼여행에 올랐던 때가
    꼭 그만큼 되었다.



    다이어리 뒤에 있는 지도를 몇번이고 펴보며
    남도의 역 하나 하나를 체크하다보니,
    열혈청년기를 보냈던 이십년 전과
    이제 음풍농월(陰風弄月)과 가무음주(歌舞飮酒)를 즐기는
    한낱 소시민이 되어
    새삼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될 줄이야...



    그 저항정신이 빛나던 도시에 즐비한
    건물외벽의 볼썽 사나운 조명등이 번쩍이는
    숙박업소를 보고 있자니,
    내가 변하듯
    세상도 변한다는 것을 역시 체감한다.



    새벽녘에야 목포역에 내리니
    눈도 눈이지만 차가운 바닷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꼬박 하룻 동안에,
    완행열차를 타고 대한민국의 남북과 동서를 횡단한 셈이다.
    남도의 끝자락은 그야말로 완전히 설국(雪國)이었다.
    그렇게 펑펑 내리는 눈은 근년에 들어 처음인 듯 했는데,
    분주히 움직이는 항구도시의 새벽 풍경도 볼만 했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남도 특유의 토속적인 사투리는
    또 얼마나 정겹게 들리는지...



    늘 만나는 벗이지만 이렇게 눈이 펑펑 오는 날,
    남도의 끝자락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인터넷을 통해 이미 친숙해진 낚시방으로 들러
    주인장과 손님들이랑 반가운 인사를 나누곤,
    한참 낚시수다를 떨다 함께 연포탕이란 음식을 맛보았다.
    아마도 세발낙지로 끓인 탕국이 아닌가 싶은데,
    시원한 국물에다 나름대로 특별한 맛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법,
    여서도 대물참돔 얘길 나누다 헤어져
    체인을 감아 덜컹거리는 차에 올랐다.
    이미 눈길운전에는 베테랑이 되어버린 친구는
    눈이 조금 녹는 듯 하자 빙판길 되기 전에 가야한다며
    체인을 풀더니 완도로 내달렸다.
    체인이라는 걸 이렇게 가까이에서 직접보고 만지는 게 처음이었지만
    여간 불편한 물건이 아니었다.



    완도와 연륙교 공사가 한창인
    신지도엘 철부선을 타고 들어가, 한 바퀴 드라이브하며
    연신 감탄을 했더니 명사십리를 구경시켜주겠다고 한다.
    모래밭에 차바퀴가 빠져 쩔쩔 매며
    모래를 뒤집어쓰는 노가다(?)를 감수했지만
    깨끗한 모래와 드넓은 백사장,
    해변을 감싼 주변풍경은가히 환상적이었다.



    저 멀리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생일, 덕우, 청산, 대모, 소안, 노화도...
    그리고 군데군데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을 배경으로
    해변에는 천진한 아이들 몇이 모래놀이를 하고있고,
    친구는 놓칠새라 아이들을 렌즈에 담는다.



    섬 여행을 할 때면 늘
    "그래, 늙으면 꼭 이런 곳에 와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내 나이 일흔이 되어야
    막둥이가 겨우 성인이 되니 도무지......^^



    아는 형님께서 완도 읍내에 새로 차린
    술집엘 인사차 들렀더니 무척 반가워하신다.
    하는 일이 시원찮아 차렸다지만
    노는 걸 즐기시는 형님께는
    적성에 꼭 맞는 일인 듯 하여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한 잔 얼큰하게 들이키고 보니
    내일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다.
    눈이 말끔히 녹아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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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G 개똥반장 02-11-30 00:00
님의글은 언제나저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군요.
하하하,저도 일흔이 되면 성인이되는 딸이 있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더 건강에 신경이 써지는군요.
님,,,건강하시고,행복하십시요,그럼 또 빕겠읍니다,,,이만,,,
-[02/05-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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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신종철대흥낚시 02-11-30 00:00
언제나 고풍스럽고 맛깔나는 글로 심금을 울리는 구료! -[02/06-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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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신종철대흥낚시 02-11-30 00:00
음악도...
김교수님 글을 읽다보면 지나간 삼라만성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건강 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02/06-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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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찌매듭 02-11-30 00:00
질풍!! 탈고를 멋지게 마쳤구랴...^^ 떠나신분의 영면과 슬픔에서 속히 벗어나시길 전해주구려...추자에는 이달말즘 시간이 날것 같구려...시냇물속의 초식을 전해주리니...^^;;;; 근데 밤새 시달릴걸 생각하면 머리털이 곧추스이~~~^^;;;;;; -[02/06-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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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김일석 02-11-30 00:00
개똥반장님도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신사장님, 새 해 하시는 일 잘 되시길 바랍니다.
매듭성님...왕고문님께 안부 전하겠습니다.
웬 초식씩이나...그리고 머리털이 곧추선다구요?
하하하~~언제나 못말리는 성님.....^^
행복하세요~ -[02/07-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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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초낚시 02-11-30 00:00
김일석님..언젠가 F-TV에 나오신분 맞나요? -[02/10-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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