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은 유난히 따가웠다.
그래서인지 여름부터 가을까지 여수 소리도로, 손죽도로, 역만도로 출조를 다녀봤지만
그다지 만족스러운 조과를 올리지 못했다.
아~ 쓰바.... 다른 이들은 쿨러 조황이니...어쩌니 하는디, 내는 억지로 시간을 내서 출조해도
벵에나 감시이 한 두 마리니...쩝...난 어복이 없어도 너무 없어....
해서 나는 큰 맘 먹고 그 곳으로 가기로 했다.
모든 조사들의 로망! 추자도!!
그 때만 해도 말만 들었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환상속의 섬. 감시와 돌돔이 버글거린다는....
그래, 한번 가 보자, 거기서 이 넘의 돌돔을 타작하는기야. 크크~
때는 11월 초순. 이제는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서늘할 무렵,
마침내 조력 10년차인 큰 동서와 시간을 맞춰 부산에서 출발하는 낚시점 봉고를 탔다.
섬에 도착하기 전에 잠을 좀 자 둬야 하는디...쏘주를 한 잔 마시고 잠을 청해도 잠이 안 온다.
하기야 우리의 로망 추자도로 첫 출조인디 잠이 오겠는가?
부산을 출발한지 4시간 정도 지났을까...땅끝에 도착하니
흐미~ 왠 조사들이 이렇게 많어? 어림잡아도 40 명은 족히 되는 거 같다.
이렇게 많은 꾼들이 추자도로 가믄 도대체 우리가 앉을 포인트나 있을라나?
추자도 첫 조행인디,,, 맘속으로 은근히 걱정된다.
에라이 모르겄다. 포인트는 그때 가서 걱정하고 우선 잠이나 자 두자. 선실에 누워 잠을 청해본다.
선잠을 잔지 한 시간 쯤 지났을까? 어수선한 소리에 깨보니 많은 꾼들이 배에서 내린다.
얼핏 들으니 보길도라 한다.
아항! 이 꾼들은 보길도로 감시이 잡으러 온 거구낭~
하긴 지금이 벌써 11월, 이제 겨울로 접어드는 시점이니 꾼들 대다수가 감시이 노리겄지....
그나 저나 여기서 좀 내리믄 추자도에 가는 꾼은 좀 줄어들꺼이고,,,크크,,,그럼 우리가 앉을
포인트도 많겄제...
선실에 누워 포인트 잡을 궁리를 하면서 또 잠을 청하는디,,,
쫌 있으니 또 한 뭉티기 꾼들이 이름도 모르는 섬에 내린다고 어수선하다.
그러기를 두 세번 반복했을까... 이제 배는 추자도에 가까워져 있을 터인디
어쩐지 선실 안이 텅 빈 듯 조용하다.
아무래도 수상해서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보니....
옴마...이기 뭐라?
선실 안에는 오로지 우리 일행 2명을 포함해서 단 4명 뿐이다.
아니... 그 많던 꾼들이 다 내린겨? 감시이 잡을라꼬?
가만 살펴보니 다른 2명도 감시이 잡으로 온 꾼들이다.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 온다.
아..쓰바...이거이 잘못 가는거 아녀? 벌써 11월인디... 다른 이들은 모두 감시이 잡는다꼬 야단인디...
우리만 이 계절에 돌돔 잡으러 왔으니... 괴기 철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 아이가?
엎친데 덮친 격이랄까... 더욱 우리를 불안케 한 건 종선이다.
선장이 전화 통화를 하고도 한참만에야 종선이 나타나 우리를 태우고 포인트로 향하는디...
해는 버얼써 떠올랐고....시간은 어느덧 오전 10시를 지나버렸다.
으...씨바...어떻게 온 추자도인디....황금 물때인 새벽을 놓치고 이제서야 포인트에 들어서니....
종선이 내려준 포인트에 앉아 채비를 하면서도 궁시렁 궁시렁
$#@$%@#^%^
일단 민장대 채비로 성게와 참갯지렁이를 꿰어 던지고 평정을 찾아본다.
그려~ 본디 어복이 없는 넘이 이렇지 뭐~
벌써 오전 11시니 오늘은 다 틀린 거이고,,, 쫌 있다가 저녁 물때 보고
내일 새벽 집중해서 전투를 벌이는기야.
괴기 좀 못 잡으믄 어뗘, 바다를 바라보면서 세월을 낚는 거이 바로 이거이 낚시의 참 멋이 아니겄는가?
억지로 나를 위로하면서 담배를 꺼내물고 먼 바다를 쳐다본다.
담배 연기를 두 모금 빨았을까?
어라?
이거이 뭐라?
방금 장대 끝이 투덕거린 거는 분명 돌돔 입질인디?
이 시간에도 돌돔이 입질을 하나?
고개를 갸웃거리기 무섭게 갑자기 장대가 꼬꾸라진다.
덜커덕!!!
뭔가 걸렸다.
그 때 내가 장대를 챈 건 아마도 본능적인, 순식간의 행동이었을 것이다.
옴마... 이것 봐라...
이거이 크다. 안 올라온다.
이 넘이 물 속에서 힘을 쓰니 짱대가 있는대로 휘어지고....괴기는 안 올라오고...
그래도 내가 갖고 있는 짱대가 돌돔 전용대로 이름난 신* 어신대 아니던가.
한 순간 숨을 몰아쉬고 힘을 줘 본다.
있는 힘껏 들어올리려 하니 이 넘 역시 죽을 둥 살 둥 힘을 주고...
나와 괴기 힘이 맞부닥치면서 짱대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갯바위를 빙 돈다.
하지만 역시 괴기는 괴기. 사람 힘에는 못 미치는 법.
결국 이 넘이 항복하고 물 밖으로 자태를 드러내는디...줄 무늬가 희끄므레한 돌돔이다.
들어뽕으로 갯바위에 눕히니 이 넘 제법 크다.
눈 대중으로 한 눈에 50 짜리다.(집에 와서 재 보니 53cm)
아! 이 상쾌함. 짜릿함.
"성님. 돌돔 들어왔소. 빨리 빨리..."
그제서야 동서와 나는 바빠졌다.
풍경이고 뭐고,,, 민장대에 성게를 꿰고, 던져 넣고...잠시 후 들어뽕...
말 그대로 타작이다.
3-4분만에 한 마리씩.
씨알도 준수하다.
작은 건 30, 큰거는 50에 육박한다.
큰 동서 왈
"내 10년동안 낚시 다녔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건 처음이다"
내 왈
"내도 그려요"
이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입질이 뚝 끊긴다.
오잉? 희안하데이...아까 소나기 입질이 이렇게 사라지다니....
그래도 이거이 다 어디고.
살림망을 들어올리려니 팔이 아플 정도다.
큰 넘 몇 마리는 이미 쿨러에 누워 있고...
살림망에 들어있던 넘들의 피를 빼고 쿨러에 담으니 어림잡아 스무마리는 넘는 거 같다.
큰 동서와 나는 그저 쿨러에 가득 담겨있는 돌돔을 내려다보며 흐뭇할 뿐이다.
이후 원투와 찌낚시로 돌돔을 노려봤지만 뻰치 낱마리에 그쳤다.
'그려. 오늘은 이만하면 됐고,,, 내일 새벽에 또 한번 타작해 볼까나?'
우리는 쏘주를 한 잔씩 하고 일찌감치 텐트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이튿날,
타작 기대에 부풀어 텐트 밖으로 나갔는데...
옴마...
파도가 장난이 아니다.
민장대 낚시는 너울파도때문에 도저히 불감당이다.
하는 수 없이 조금 높으로 곳으로 올라가 원투로 채비를 던지니...잠시후 준수한 돌돔이 걸려든다.
크크...오늘도 타작인가?
하지만 파도가 영 불안한디....
아니나 다를까... 부르지도 않은 종선이 바짝 다가오면서
주의보 떨어졌다고 철수해야 한단다.
'우 씨~, 이 넘의 날씨까지 내 발목을 잡네...'
하는 수 없이 종선을 타고 본섬으로 돌아와 낚시배에 옮겨탔다.
선실에 들어가니 어제와는 다른 조사 2명이 타고 있다.
그들 역시 감시이 낚시를 한 모양인데, 얼굴 표정을 척 보니 꽝이다.
꾼들이야 표정만 보면 알지 않는가?
크크크,,, '우리는 돌돔 타작했는디...' 맘 속 뿌듯함 속에서도 우리는 무표정하게
선실 안에 자리를 잡고 눕는다.
잠시 눈을 붙였나 싶은디...밖이 시끄럽다.
보길도니, 이름 모르는 섬에 내렸던 꾼들이 배에 올라오는 소리이다.
"재미 좀 봤나?"
"재미는 무슨,,,꽝 쳤소"
동서와 내는 말 없이 누워 있었지만 아마도 얼굴엔 미소가 번졌으리라.
그 때,
어느 꾼이 우리 쿨러를 열었나 보다.
"우와, 이거시 다 뭐다냐?"
"누군지 손 맛 징하게 봤겄네 잉..."
그제서야 우리는 천천히 일어나서
"오늘 손 맛 쬐께 봤심더"
그러면서 느긋하게 쿨러를 열어 그 중 작은 넘 3마리를 꺼내 주며
"쏘주 안주나 하이소" 큰 인심을 쓰듯이 건네준다.
꾼들과 어울려 쏘주 한 잔 들이키고 다시 선실에 들어와 누울 때
그제서야 승자의 미소가 입가에 묻어 나온다.
추자로 출조할 당시의 불안감은 벌써 남 일처럼 까마득히 잊고 자만감에 빠져 들고 있었다.
'크크크, 남들은 감새이 치러 가서 꽝 칠때 우리는 돌돔으로 쿨러 조황이라...
이거이 바로 꾼 아이가?'
아~ 인간의 간사함이란.....
이후로 추자도의 명 포인트라는 오동여, 사자섬, 관탈도 등을 돌며 돌돔을 잡아봤지만
아직까지 그날의 타작 기록은 깨지 못하고 있다.
'올 가을 그 곳, 그 포인트로 가 보리라.'
지금 이 순간도 그저 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