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부분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낚시대를 멀리 한지 벌써 3년이 훌쩍 넘고 수많은 애환을 안고
지내왔던 지난 시간이 그리움으로만 쌓이는데 전쟁터와 같은 삶은 현실에서 그저 입술만 꼬옥~깨물며
바다를 그리워만 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장검을 뽑아들고 지나간 발자취가 남아있는 모든 갯바위에 다시 펠트창의 흔적을 남기는 날이
올 것을 내심 기다리며 2004년 10월을 마지막으로 마약보다도 더 중독성이 강한 바다낚시가 하루에
몇 번이고 나를 유혹하였지만 컴 앞에만 앉으면 하루에 몇 번이고 들락거렸던 인낚도 즐겨찾기에서
지우고 아니 뇌리에서도 지우며 기약 없이 즐기고 즐기던 낚시를 접기로 했답니다.
가끔씩 아련해지는 형님, 아우들과의 만남과 전화에서도 다시 갯바위에서 뵐 그날까지 참아달라고
말씀드리며 지척에 바다가 있어 한걸음에 다달아 온몸으로 흠뻑 젖을 바다의 향기가 뇌리를 스치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시 만나는 그날이 올 때 까지 참기로 했답니다.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장만했던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용적인 손때가 뭍고 애환이 서린 장비들도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바다로 바다로 가자고 유혹하기에 낚시를 즐기는 아우들을 불러 차례로 하나 둘
나눠주며
“내 대신 즐낚하며 그간 자연산 회맛에 길들여진 나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게 출조 후 손맛을 보는 날 여유 있다면 지나가는 길에 고기 한 마리 던져주고 가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습니다.
중학교를 다니던 아들녀석이 훌쩍 커서 올해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년이 지난
올해 2008년 1월 햇수로 5년이고 정확히 3년3개월만에 찌낚시 채비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물거리기만
하는 뿌연 새벽에 삶의 한자락으로 스러지던 갯바위가 그립고 그리워 어쩜 헤어진 애인보다 더 보고
싶을 바다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나의 오랜 벗이자 갯바위 파트너였고 바다낚시에 일가를 이룬 서울의 파도타기 친구와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갯바위에서 칼싸움을 하자고 의견을 나누고 전에는 꽉차있던 장비함이 텅비어 있어 몇가지
소품 구입하고 낚시대는 아우들에게 빌려 첫 공략지를 그간의 출조와 경험으로 손맛은 일단 보장하는
대마도로 정했답니다.
이렇게 다시 갯바위에 서서 그리움으로만 쌓여가던 향긋한 바다내음을 적시면서 찌낚시는 할줄도
모르고 온리 선상우럭낚시만 다니는 선배님을 모시고 반찬거리를 잡으러 3월에 망망대해에 등대
하나만 외로이 서있는 복사초에 도착했으나 멀미약을 먹었는데도 심한 멀미로 선실에서 쓰러져 있었다.
잠결에 누군가 깨워서 눈을 비비고 보니 낮 익은 곳이다. 밖에 나가보니 예전에 무수히 다녔던 병풍도
서들개 포인트 앞이 아닌가.
복사초에선 너울이 너무 심해 병풍도로 이동했다는데 이곳은 너울이 없고 잔잔하여 채비를 내리니
연달아 후두둑 하는 열기의 입질이 느껴진다.
몇 번의 만땅걸이와 함께 반쿨러를 채우고 돌아와 몇 년 만에 식탁을 풍성하게 갓 잡은 싱싱한 생선으로
채워 봤습니다.
봄내음 익어가는 4월엔 봄도다리요 가을엔 전어라 했지...
살오른 봄도다리가 그리워 목포낚시점 아우에게 연락하여 선박을 예약하고 봄도다리 그 유명한 압해도
무지개등에 출조하여 도다리 낚시 도중 느닷없는 32cm 감성돔 한마리 체포하고
살이 통통오른 봄도다리 타작하여 쫄깃한 그 횟감이 잊어가던 바다의 내음을 되돌이켜 주었습니다.
5월 산란기에 들어선 감성돔을 만나기 보다는 날 바다낚시에 입문하게 만든 빈바늘 친구와 함께
지척이면 닿는 영광으로 6칸 민장대 하나 들쳐 메고 물오른 보리숭어 타작하여 노친께서 다니시는
경로당과 주위분들에게 한 아름씩 나눠드려 칭찬도 받고 부러움도 사며 보리 익는 한 달을 보냈답니다.
6월 14일 목포에서 낚시점을 하는 신안감시 아우로부터 아직은 갯바위 미답지로 남아있는 흑산도
부속섬에 올 여름낚시를 대비하여 돌돔과 참돔 생태탐사를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지난번 출장길에
본격적인 갯바위 시즌에 대비하여 마산 삼육오사에 들려 새로 출시된 세제EF대와 세제프리미엄 낚시대를
구입해 뒀는데 이 장비의 테스트 겸 냅다 장비들을 챙겨들고 목포 북항에서 지척을 분간키 어려운 해무
가득한 바다에 몸을 맡기고 출발하여 바다내음과 기암괴석의 절경만 보고 왔습니다.
철수길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와 일요일 날 무안 홀통으로 낚시를 간다는 이야기에 목포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바로 현지 합류하여 오전 물때에 겨우겨우 30되는 감성돔 3마리를 체포하여 귀가하여 집으로 왔답니다.
장비를 정리하고 있는데 집사람이 거실 유리창 청소에 낑낑대고 있어 1박2일의 조행이 미안하여 유리창
닦는거 도와주는데 아뿔사 유리창이 깨지면서 쏟아져 오른팔 관절에 박히면서 피가 솟구치는데
바로 병원행.....
유리조각 제거와 신경접합, 근육접합 수술을 마치고 나니 다행히(?) 인대손상은 없단다.
이게 20일간의 입원생활이 될줄이야....
아직도 상처부위 일부는 신경이 재생 안 되어 감각이 무디지만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7월8일 고성에서 낚시선을 운영하는 프로연맹 이종욱 아우로부터
“형님~ 요즘 욕지도에 벵에돔이 엄청나게 붙었는데 함 내려오이소”
이 전화에 아~ 퇴원한지 겨우 이틀 지났는데 이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일단 장비부터 주섬주섬 챙기는데 마눌 왈
“의사가 당분간 무리하게 오른팔 사용하지 말라 했고 그 상처에 딱쟁이도 안 떨어졌는데
딱쟁이나 떨어지면 가세요” ㅡ,.ㅡ;;
네비게이션이 아니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고성 어느 조용한 어촌 낚시점에 도착하니 밤 12시30분
차량에서 잠깐 졸고 있으니 종욱이 아우가 도착하여 깨운다.
이곳 광주에서는 거의 출조가 이루어지지 않는 머나먼(?) 욕지도 욕지도는 전에 몇 번 출조 해 본
경험이 있지만 멀리서 형이 왔다고 낚시선을 내 팽개치고 나와 함께 포인트에 내려준 아우가 고맙다.
기대했던 3짜 이상의 씨알이 아닌 벵에돔인데 그러나 이곳에선 평균씨알이란다.
이곳에 1박2일 일정을 잡았지만 씨알이 너무 작아 이튿날은 여수로 향하기로 하고 아우와 다음 감성돔
시즌을 기약하며 여수로 발길을 돌렸다.
10일 새벽3시 여수 극동항에서 몸을 싣고 소리도로 향했다.
예전에는 여수권 벵에돔 씨알이 작아 소리도에는 감성돔 위주로 출조했지만
요즘은 씨알이 제법 굵어 졌단다.
아직 새벽이지만 바람 한점 없는 갯바위는 무더워 이마와 등줄기에 한없이 땀이 흐른다.
여명과 함께 목줄 2.5미터 지점에 00부력의 목줄찌를 세팅한 제로찌가 힘차게 새벽공기를 가르며 밑밥을
친 포인트에 착수하자 채비정렬과 함께 스물스물 빨려 들어가는 목줄찌...
챔질과 함께 벵에돔의 당찬 손맛이 전해진다. 30이 넘는 비슷한 사이즈의 벵에돔을 연속 두 마리를
체포하고 썰물에 우측을 보니 물결이 휘감는게 물속에 분명 숨은여가 있다.
케스팅을 숨은여 옆으로 하고 채비정렬을 시키는데 또 목줄찌가 스물스물 빨려 들어간다.
챔질과 함께 이번엔 40급은 충분한 당찬 손맛이 전해진다. 그러나 수면위로 띄우니 흑기사 벵에돔이
아니라 은빛 비늘을 곧추세운 감성돔이다.
바로 이런 손맛에 힘든 출조길과 찌는 불가마 같은 갯바위를 마다않고 긴 시간을 소모하며 다시 바다를
찾는게 아닐까?
뜻하지 않은 감성돔을 갈무리 하고 다시 채비를 날리는데 갑자기 옆에서 휘~ 하는 숨비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어디서 온 해녀 한명이 자맥질을 시작한다.
대박(?)을 할 것 같던 입질은 순간 잠잠하고 해녀할머니의 긴 숨비 소리만 바닷가에 울려 퍼질 뿐이다.
낚시대를 접고 한시간 가량의 자맥질을 구경하며 해녀가 아줌마였음 전복 하나 달라고 자겁(?)이라도
해볼건데 할머니라 해녀할머니를 싣고가는 어선이 떠날 때 까지 애꿋은 담배만 줄초상 내며
줄자로 계측해보니 49cm다.
인낚에 모바일조황을 보낼려고 핸폰을 보니 밧테리가 오링이라 사진을 못찍는단다..;;
블랙러시안 아우에게 전화할려니 바로 전원이 꺼져버린다ㅡ,.ㅡㅋ
해녀할머니가 떠난 후 모기와 전쟁을 하며 채비를 흘려보지만 손가락만한 엄청난 고등어 군단이 들어와
더 이상 흑기사와 싸움을 접고 다음을 기약하며 철수길에 올랐다.
이거 다시 낚시병이 도지나 보다.
12일엔 여수를 다녀온지 이틀만에 친구가
“모처럼 쉬는 일요일이라고 집에서 놀면 뭐하나 갯바위에서 놀자”고 한다.ㅡ,.ㅡㅋ
장소선정에 고민고민 하다가 대물은 아니지만 손맛은 충분 하다는 고흥 녹동의 낚시점의 이야기를 듣고
장도로 출조지를 정했다.
옆 초도의 명성에 가려진 섬이기는 하나 참돔의 산란장으로 유명하고 여밭과 직벽이 고루 분포되어 있는
장도는 신라시대 장보고의 청해진이 자리한 역사적인 섬이기도 하다.
13일 새벽 2시에 녹동항을 출발하여 장도 본섬과 부속섬 사이에 있는 큰 여덩어리에 내려 전자찌를
흘려보지만 올라오는 건 30cm 넘을까 말까 하는 유치원에서 놀러온 아가급 상사리와 용치놀래미 뿐이다.
9시가 되어 포인트 이동을 수심깊은 직벽지대로 했다.
이곳에는 엄청난 고등어 군단이 포진하고 있어 크릴은 착수와 동시에 고등어들이 물고 내 달려
사라져서 낚시점에서 준비해온 홍거시를 미끼로 사용했다.
그래도 홍거시 미끼에 아가상사리부터 제법 상사리 티를 벗을려는 30급들이 올라온다.
아침부터 흐리던 날씨는 이내 굵은 빗방울로 변해 물에 빠진 생쥐꼴을 만들지만 그래도 고등어 속에서
가끔 올라오는 상사리의 손맛에 기분은 좋다.
차라리 멸치 같으면 초장에 찍어먹기라도 하지 반찬으로도 못쓸 손가락 고등어 100여마리 내던지고
상사리 10여수와 구워먹으면 최고의 반찬감인 대물(?)용치놀래미 몇수 하여 집에 돌아와 손질하여
구워서 저녁을 가족들과 함께하며 식탁에 웃음이 가득하니 이게 행복이 아닐련가.
오늘도 서울에 파도타기 친구 이번 주 광주에 출장 오는데 업무마치고 갯바위에서 함께 칼싸움 한번
하자는데...
늦은밤 인낚에 낯익은 아이디를 바라보며 페이지를 뒤적이다가
아;; 다시 낚시마약에 서서히 젖어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