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래도 참았다…….
춥고 긴 겨울동안 눈비와 바람에 파묻혀 봄이 오기나 하려는지
걱정을 한 순간도 있었지만 눈 한번 껌뻑이니 봄도 지나가버렸고
어느새 여름 깊이 들어와 있었는데 봄바람을 타고 가거도로 볼락낚시도
다녀왔었고 갈치와 한치 낚시도 여러 차례 다녀오긴 했지만 제대로 된
낚시여행을 기다리며 오래도 참았다는 억지스러움 속에 이번엔
폭염 속에 파묻혔다.
복(伏)중에는 낚시를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해마다 다짐을 했었지만
이번에도 지켜지지가 않았다…….
선임자들도 지키기가 쉽지가 않았던지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와서는
되풀이 하는 말이 복중 낚시를 삼가라고 했던가?!
그들도 지키기가 쉽지 않았던 말을 나도 자꾸만 되뇐다.
꿈을 꾸게 해줄 바다로의 며칠간의 여행을 위해서, 폭염이 연일 이어지는데도
덥다는 소리를 낮추고 있는 것이 더워죽겠다는 소리를 내면 꼼짝 말고
집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나 쐬고 있지 무슨 낚시를 가려느냐. 는
딴지를 염려해서겠지?! ^^;;
목포의 미스터 박(朴)이 생애 절호의 기회로 잡은 일정이 7월 20일경이었는데
짓궂은 태풍이 앗아가 버렸기에 모든 꾼들의 아낙들처럼 쾌재를 부르던
그의 아낙은 아주 드러내놓고 물개박수 삼창으로 환호를 했다니 젊고
철없던 때의 나처럼 그도 살의(殺意)를 떠올린 건 절대로 아니겠지?! ^^;;;;;;;;;;
스스로의 약속대로라면 만재도 최고의 낚시기간인 장마철이나 초복이
시작되기 전인 7월 중순전이나, 노 선장의 말대로라면 음력 6월이
시작될 때부터가 가장 만재도 낚시의 호시기인데, 비 오시는 장마철에
어디를 가려냐고 걱정을 하는 노모나 혹여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비 오는 날을 일부러 골라서 가려느냐. 며 장마나 끝나면 가라고
가로막는 마나님은 장마철에 가장 빛나는 곳이 만재도 라는걸 모르다보니
온갖 고기가 떠올라 쉽고도 편하게 많이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믿지를 않는다.
하긴 비라도 오는 중에 낚시를 하다가 고기가 물려서 팔을 높이 쳐들고
씨름을 하다보면 손목부터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겨드랑이를 지나서
옆구리를 타고 내려가 허리춤 속까지 파고들어 오는 꿉꿉함이 상당히
거북스럽긴 하지…….쩝…….
장마가 끝나면 이번엔 오래전부터 행해진 섬마을에서의 미역작업이 시작된다.
모범적인 기초연금의 시작이라 할 미역작업은 행여나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섬마을 사람 중 누구든. 한집에 한사람씩 나와서 참여를 하면 수확한 미역을
똑같이 배분하여 그것을 팔아서 쌀과 기름. 소금만 사면 1년을 먹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으로 오늘날의 기초연금제도와 비슷한데 돌대가리 나리들이
밥값을 한답시고 늦게라도 만들어 놓았다지만 이렇게 먼 섬에서는
오래전에 만들어놓았으니 얼마나 현명한가?!
물속에 들어가 남들보다 더 많은 힘든 일을 하거나 배를 제공하는 사람에게는
배당이 더 되긴 하겠지만 6월 하순경부터는 만재도의 연례행사인 미역채취가
시작되곤 하니 남들은 땀 흘려서 일하고 있을 때 팔자 좋게 낚시놀음을
벌려 보려고 만재 도를 찾아간다는 것이 염치가 없기도 하기에 이차저차
하다보면 7월 중순을 꼭, 넘기곤 한다.
갯바위로 태워다줄 젊은 고 선장은 만재도의 어촌계장과 여객선의
도선 일을 함께하기에 미역작업 때는 더욱 바쁜 사람인데, 자기네
고기잡이 그물일도 못하는 판국에 갯바위를 오갈 시간도 정신도 없다.
민박집 아저씨와 친척간이다보니 이용하긴 하는데 이런저런 관계를 무시하고
또 한 척 있는 옆집 배를 이용 할 수도 있겠다만 그러기가 또 쉽지가 않다…….
두 척의 배가 있으니 누구든 간에 손님을 멍하니 세워놓지는 않겠거니
고집을 부려 찾아오는 손님도 더러 있기에 미역을 내려놓는 잠간의
틈새에 맞추어 가까운 갯바위로 얼른 가볼 수도 있긴 하지만 이래저래
눈치를 보지 않는다면 바보 멍청이거나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할 짓도 아니고.......
사실, 금년부터는 이것저것 다 무시하고 옆집 배를 타보기로하고 일찍
짐을 꾸려놓았었지만 예년보다 수온이 차다고 노 선장이 말을 흐렸는데
일찍 봄바람을 타고 볼락낚시를 다녀온 가거도 에서도 예년과는 달리
서늘한 기운을 느꼈었기에 주춤 할 수밖에 없었고
그 다음 물때에는 옆집 아저씨가 목포의 병원에 갔다기에 주저 앉아야했다.
가거도 같이 오뉴월에 미역작업을 하면 좋겠지만 미역의 성장속도에 따라
채취기간이 두 달 정도 차이가 있다 보니 금년에도 눈치를 보면서 어서
미역작업이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려볼밖에……
낚시점의 점주가 선상낚시를 다녀온 모양이었다.
많은 양의 고기를 낚았다며 남들이 와서 뒤적거리기 전에 다녀가라는
문자가 왔지만. 갑작스레 생긴 일들로 자리비우기가 쉽지가 않았으니
여러 날을 계획해야하는 낚시여행이 쉬울 수가 없다. ㅜㅜ
장마와 태풍으로 자꾸만 연기가 되던 미역작업이 7월말이 되어도 끝이 안 나겠다기에
탐라로 한치 낚시를 몇 번 다녀오면서 만재도행이 미루어졌는데 날도 덥고
시기를 넘겨서 미역이 쇠어 버렸기에 갑작이 미역작업이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엊그제까지의 통화에서도 끝이 안 보인다고 하더니 통화한지 이틀 만에 끝이 났다니
그럼 섬의 할마씨들은 어떻게 살라고 중단했는가하니 평소의 절반 정도는 했고
뭍에서 시작한 기초연금혜택도 있으니 살 수 있을 거라고 한다…….
한 달 가까이나 하던 미역작업이 금년에는 열흘 만에 끝이나버렸고
서 씨 아저씨가 목포로 내려가는 중이라는 문자를 보내온 날이 그 다음날이었다.
물살도 점점 세차지고 달도 둥글게 변해가면서 머리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을게고
어둡기 전의 만조시간까지 모든 것이 맞지가 않는 악조건에다가 또 다른
태풍이 저 멀리 보이고 있었지만, 8월부터는 바쁜 일이 시작되기에
혼자라도 만재 도를 다녀와야겠다더니 낚시점의 배가 뜨는 날이 있기에
급히 내려가는가. 본데 서 씨 아저씨도 몸살기가 도졌던 모양이다.
첫날 내렸다는 장소에서는 밤새도록 작은 농어새끼들의 등살에
손을 들고 말았다는데 혼이 빠져 나갔는지 자기가 내린 장소가
어디인지도 제대로 기억을 못하는지 동쪽자리였다기에 그 곳에도
농어 떼가 설치는 곳이 있는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민박집 아저씨에게 들어보니
서쪽의 등대 밑 높은 자리였다기에 뜰채도 닿지 않을 그 높은 자리에
어떻게 혼자서 내렸을까 궁금했다.
고기 잡는 방송은 가끔 보는지 용왕님을 찾아보았지만 인색하게 하루에
일곱 마리씩만 배정을 해주었다는데 만재 도였기에 그나마도 낚을 수가
있었겠지만 아직도 뚫리지 않았을 맥이 궁금스럽기만 하다.
채비를 투척 후, 견제, 정렬, 당김, 선행을 반복하라고 목이 아프도록 일렀지만
소 잡아먹은 귀신이 세 마리나 씌웠는지 도통 들어먹는 것 같지를 않았는데
채비를 한 번에 우르르 던져 넣는 것을 보면서 얽히지 않을까 다른 이들과
함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면 또 그대로 넘어가곤 했는데 그나마도
목줄을 짧게 써도 되는 곳이 만재도이다 보니 괜찮은가 보다.
민물낚시를 하던 서 씨 아저씨가 소양 댐을 가면 1주일씩 낚시를 한다기에
그렇게 시간을 낼 수가 있다면 차라리 바다낚시를 다녀보라고 꼬드겨서
단번에 낚시의 덫 속으로 깊숙이 빠져 들라고 커다란 농어 잡이가
가장 쉬운 외연 도를 시작으로 만재도로 끌고 온 것이 이천년 대초였으니
서 씨 아저씨가 만재 도를 다닌 지도 15년이 넘었다.
사리 때는 가거도로……. 조금 때는 만재도로 자주 다녔을 때는 만재도만
연중 열 번을 다니기도 했으니 7~80번은 다녔을 게고 한번에 3~4박의
기간이었으니 3백회 이상을 갯바위에 올라봤다는 계산인데
너무 나에게만 의지를 하다 보니 포인트에 대한 집중이 없어서
확실하게 아는 포인트가 열 곳도 넘지를 못한다.
자기는 머리골치 아프게 모든 것을 깊이 알려고 하지를 않기에 기억을
하려고 하지도 않고 담아 두지도 않는다니 지난번에 내렸던 장소도
어디가 어딘지 기억을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버니&클라이드의 웨렌비티 스타일이다.
세대의 흐름을 무시하고 구형의 폴더 폰을 고집하던 서 씨 아저씨가 드디어
스마트 폰으로 바꾼 지가 두 달이 됐고 카톡도 깔았다는 신호가 잡혔기에
문명의 세계로 들어선 것을 경축한다는 톡을 보냈지만 하루에 한 번씩만
들여다보는 습관은 여전했기에 오늘은 어느 장소에 내렸는지를 알려면
이틀이 지나야 했고 배터리를 아끼는 투철한 절약정신은 변함이 없기에
꺼두었던지 통화불능 상태에서 하품을 이틀이 넘도록 하고나서 확인해보니
만재 도에서 예정했었던 열흘의 일정을 못 채우고 철수를 했다는 것이
7월말이었다.
서 씨 아저씨를 만재 도에서 쫓아낸 태풍이 지나가지를 않았기에 또 다른
약속도 어긋나게 되었는데 점점 날은 뜨거워지지만 꾸려 두었던 짐을 풀었다가
다시 꾸리기를 두 번이나 반복했었기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낚시점의 배도 적은 손님으로는 운항을 할 수가 없다면서 날짜를 제대로
잡지를 못했는데 진도의 서망 항에서 들어가는 배편은 또 있다니 낚시점과
현지의 종선 간에 보이지 않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이 느껴지나
언제 배편이 확실할지 알 수가 없기에 노모(老母)의 컨디션이 최상인 틈을 타서
여객선을 이용하기로 하고 차에 짐을 가득 싣고 이번에도 일찍 짐을 나섰다.
이른 나섬에는 길 막힘도 없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지만 여행의 백미인
들러 볼 수 있는 맛 집에서의 여유로운 점심을 어디에서 먹을지를 생각하다가
함평의 육회비빔밥으로 정하곤 가장 입맛에 맞는 식당 앞에 도착했지만
끝없는 대기행렬에 밀려서 부근의 다른 집에서 대신하게 되었지만 한수가
부족한 맛이라니.......
어두워진 목포의 낚시점에 도착하니 수족관에는 농어와 우럭이 가득 찼는데
매물도로 선상낚시를 가서 예정했던 시간의 절반도 안 걸려서 낚아
온 것이라고 했다.
매물도?! 좋은 곳임이 분명한데 연이 닿지를 않아 가보지를 못한 섬이다.
낚싯배 운항이 불투명하여 객선을 이용하여 들어가게 되었으니
이틀 후에나 들어간다는 배편에 추가로 사용할 밑밥과 미끼를
넣어 달라는 부탁을 해놓곤 마침 목포에 나와 있던 노 선장의 아들을 만나
떡갈비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다른 유명 식당은 기존의 손님도
많은 터에, 방송의 유명세까지 타게 되어 준비한 재료가 떨어져 이 집으로
예약을 했다니.....
연잎으로 예쁘게 감싸서 나온 고깃덩이를 잘라서 입에 넣으니 미끄덩한
기름덩이가 혀에 감돌았는데 남은 고깃덩이를 헤쳐 보니 큼지막한 기름들이
양념 물에 들여져 언뜻, 부드러운 식감을 주었지만 건강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세상이기에 너무 예민하게 대하는 것 같다만 과체중에 신경을 쓰다 보니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잘도 보인다.
버려야만 하는 지방을 돈을 주고 사먹는 이상한 민족이다 보니 대창을
양말 뒤집듯이 감추어 내놓아도 맛이 있다고 띵호~!
고깃덩이에 무슨 눈이 내린다고 설화가 피었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발라내어 버려야할 지방이 박힌 고깃덩이에 불과한 등심을 꽃등심이라고
칭송을 하면서 비싸게 돈을 받아먹고는 뒤돌아서서 누런 송곳니를
억지로 감추며 비웃는 고기 집 주인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나 했는지 궁금하다…….
뜨거운 열에도 제대로 녹지를 않고 덩이진 채 섞여있는 지방덩이를 젓가락으로
절반이나 발라내다가 영업시간이 종료됐음을 알리기에 매번 들르던 찜질방으로
옮겨서 여객선 출발까지 넉넉히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지만 자리를 뜨면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탓에 거의 뜬눈으로 밤 시간을 보냈다.
주말이 끼어있는 관광 철에는 여객선의 자리가 없기도 하기에 되돌아온 적이
있었다는 노 선장의 염려에 표부터 구입해놓고 어찌됐던 긴 시간이 걸리는 만큼
억지로라도 아침밥을 먹어야겠기에 근처의 식당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터미널 근처의 식당 밥이라는 것이 그렇고 그렇다 보니, 제대로 된
콩나물국밥집이라도 없을까 기웃거리다가 건너편의 식당을 찾아 들어가니
터미널부근의 그렇고 그런 식당이라는 말을 안 들으려고 성의껏 준비를 한다는
아줌마의 마음 씀 새가 기분을 좋게 해주었기에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이 더위 속에 목포의 북항에 몇 일간 차를 세워두려면 혹시라도 무슨
탈이라도 나지 않을까 염려가 되던 터에 여객선 터미널의 그늘진 주차장에
세워두게 되었기에 한결 마음은 편하게 되었지만 많은 짐을 옮겨 싣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