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해가 바뀌면서 넘어가는 달력장이 안타깝기에 바다구경이 쉽지가 않은
서울하늘 어느 아래에서 가장 쉽게 가볼 수 있는 갈치낚시라도 가보려고 했지만
금년은 바다길이 쉬 열리지가 않아 갈칫배들도 움직이기가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3월이 어느 틈에 지나가버렸고 4월도 절반이 넘어갔지만 좋은 날이 하루 이틀이면
영등할매의 심술로 나쁜 날은 열흘을 가니, 새 단장을 끝낸 배들이 좀체 나서보지를 못했다나보다.
인터넷속의 낚시로라도 갈증을 달래려고 미리 준비물이나 갖추어 놓으려고 뒤지고 뒤지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택배상자들이 도착했고, 남당 항에서는 새조개 축제가 열린다기에 구경을 간 김에
격렬비열 도의 농어 철이 시작되면 어떨 까고 신진 항까지 가보았는데 저 이상하게 생긴 배는
무슨 낚시를 하는 배인지 궁금하다…….
가까운 바다라도 한 바퀴 돌아보고 왔지만 이상한 짠 갈증은 좀처럼 가라앉지를 않으니 어쩌면 좋을까?
앞으로도 사용할 것 같지 않은 저 부력 찌와 용품을 한 움큼 챙겼다가 설계사무소의 실장에게 전해줬고
3월에는 일산의 낚시박람회를 구경 갔었는데 금년에도 별로 볼 것이 없겠기에
맹탕 걸음 일게라고 생각했는데 구경 다닌 이래, 가장 변화가 심한 박람회가 아니었을까?!
갈치와 두족류의 변화된 지깅채비와 여러 용품의 발전을 보니 오래전에 병풍 도를 가면서
스픈 루어로 갈치를 처음 잡아보았던 목포 방조제에서의 기억과 구십년 대에 외연도 길을 열면서
찾았던 무창포의 부사 호에서도 갈치 잡는 법을 웅천 제일낚시의 조 씨에게 가르쳐 주었던
생각이 났는데 이제는 예쁘다 못해 아름다운 쇳덩어리로 갈치를 잡아 올리고,
이상한 모양새의 애기라는 것으로 홀려내는 인간의 간교함에 두족류들은 어디로 숨어 버릴 수가 있을까?!
머리를 짓짜내서 엉성하게 만들어 써봤던 것들이 멋진 모습으로 탈바꿈해서 제품으로
쏟아져 나오니 사서쓰기만하면 되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스플 까지 교체가 가능하다는 소형 전동 릴을 다음번 구매품 1위로 정해놓고
배터리를 먼저 챙겨놓는 발 빠른 행보 탓에 카드를 몇 번이나 꺼내들면서
지름신 경계를 제대로 못한다는 자책에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 중략(中略) ~~~~~ ))
잔인한 사월이 넘어가고 신록의 계절인 오월로 들어서자마자 무료한 시간을 달랠 겸해서
서해안 어느 쪽의 방파제를 찾아가선 이른 물속 뒤지기로 신발짝만한 갑오징어 세 마리를
구경할 수가 있었는데 유튜브(YouTube) 에서 갑오징어 애깅낚시의 달인이 지난 가을경에
연안에서 연거푸 큼지막한 갑오징어를 낚아 올리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테트라포트며 근처의 시멘트 구조물을 보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낯익은 장소였는데
해녀들이 전복을 따와서 팔기도 하는 태안권의 작은 항 부근 같았다.
아직 이른 시즌이었지만 그곳보다는 조금 더 아래쪽이라면 연안으로 다가올 곳이
있을 것 같기에 지금은 기억들도 못하는 엉뚱한 장소긴 하지만 예전에 무창포
제일낚시의 조 씨가 반찬을 하겠다며 작은 갈치를 낚던 곳으로 장소를 정하였다가
빗방울이 돋는 날씨로 더 가까운 곳으로 마음을 비우고 다가섰다가 횡재를 한 셈이었다.
당진 쪽의 꽈리고추가 품질이 좋다는 평이 있었기에 텃밭에 심을 모종도
근처에서 구해가기로 한 것이 해를 건너가며 모종도 심는 것이 병충해 방지에 좋다며
거리가 먼 곳의 다른 모종 상에서 구해다 심으라고 한 기억이 있었기에
늦은 점심도 해결할 겸 찾아 나선 곳이 삽교호 부근의 장터였는데 이곳에 맛집 방송에서
손님이 줄을 잇는다는 일만 오천 냥이나 한다는 소머리 국밥집이 있다고 했다.
마침 장날이었기에 점심도 먹고 고추모종이며 이것저것 구해가면 하루에
세 가지를 치러낸 셈일 텐데 어찌된 일인지 맛집 방송을 하는 백 씨가 극찬을 하고
네티즌들도 많은 평을 올렸다는 집은 외출중이라는 종이 장을 붙여놓고
귀신집이 된지가 오래된 형상이었다…….
근처에서 모종부터 사면서 물어보니 빗방울이 아침부터 보이기에 손님이 적을 것 같아
문을 안 연 것 같다는데 손님들이 몰려든다는 말은 만들어낸 소리였나 보다…….
역시 방송에 나온 건 대부분이 억지연출이 분명한데 낚시방송도 연출이더라고…….
언젠가 3세대 점주가 운영하는 무창포 제일낚시점에서 외연도로 농어루어낚시를 가는 날에는
인천의 출조전문 총무가 낚시방송 기자와 함께 왔었는데 그네들은 농어를 낚아 내지를 못했기에
내가 잡아놓은 농어를 빌려가서 몇 차례나 잡아내는 시늉을 해가면서 연출을 했는데
마주친 내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얼굴들을 붉혔다.
빠른 물골이 있는 외연도 부속 여인 붉은 수수팥뎅이의 골은 물살이 세차기에
농어가 깊이 내려가 있는 곳인데 무거운 루어를 멀리 던져놓고 제 무게로 내려가도록
견제를 하면서 붙들고 있다간 감촉이 느껴질 때 채보면 제대로 루어의 바늘이
농어입안에 박히곤 하는 곳인데 루어를 던지는 법과 다루는 법을 일러 주면서
견제를 해보라고 일러주면서 고집들이 센 건지 알량한 자존심을 때문인지 들어 먹지를 않았다.
그러려면 뭣 하러 낚시를 다닐까?
삽시도, 외점도, 화사도의 홍합여, 외연도 권의 초망서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황도까지의 갯바위에서 오래도록 혼자서 즐겼던 참돔낚시였지만 선장들에게 하나 둘씩
방법을 일러 주게 되었고 한정된 갯바위의 포인트에서 선상낚시를 시작하면서
포인트 개척을 넓혀 가게 되었는데 배를 가진 선장들이 더 열성적이었고
매일 같이 물에서 지내는 선장들이다 보니 지금은 서해중부권 제일의 선상참돔낚시의
최고 명선장들이 되긴 했지만 참돔낚시를 알지 못했을 때는 농어낚시만을 다녔었는데
본격적으로 선상참돔낚시의 시동을 걸게 되면서 부터는 농어낚시를 그만 두었다.
농어낚시를 하면서 소비하는 기름 값이나 루어 몇 개를 팔아서는 수지타산도 안 맞았겠기에
그만 두었지만 그 때문에 농어자원은 많이도 늘어났을 게다…….
꼬맹이의 날인 어린이날에는 호주머니를 털렸고 다음날은 선친의 기일이기에 아침 일찍
성당에서 연미사를 올렸고 다음날은 어버이날도 끼었기에 노모에게 한 번 더 들러보니
잠시 시간의 공간이 열렸다…….
작년부터 봄 볼락을 멀리도 가서 잡아보자며 가거도행을 제안했던 박 군이,
조용하고 친절한 집이 생겼다며 알아본 곳이 1구에 새로 생긴 민박집이라는데
오랜만에 찾아갈 가거 도에서 다섯 번째의 집이 되나보다.
1985년 선배와의 술자리에서 알게 된 유 선생이란 분은 머리숱이 짙은
다부진 체격의 낚시인이었는데 그 분의 안내로 찾아간 곳이 그때로서는
들어보긴 했는지 ,흑산도까지 배를 타고 들어가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다른 배를 타고 또 몇 시간이 걸려서 간곳이 가거도 라는 섬이었는데
물위에서 택택이 목선위로 건너뛰어 자갈밭에 내려서 잠시 정신을 차리곤
또 어디론가 너울너울 한참이나 통통배를 타고 가서 위험스럽고 어렵게 갯바위에 내려서서는
팔뚝만한 굵기와 전봇대만한 길이의 글라스롯드 재질의 낚싯대를 움켜쥐고 에고고니,
땀을 흘리고 있으면 손바닥만 한 우럭이나 노래미가 걸려들었는데 초행자에 초보자니
얼빵한 자세와 반쯤 날아간 정신으로 달려드는 파도에 쓸려나가거나 신발이나 옷이
젖지 않을까 신경을 쓰노라 정작 제대로 된 낚시는 뒷전이었다…….
그 후로도 찬바람이 나는 가을까지 멀미를 견뎌가며 몇 차례
끌려 다녔다고 하는 것이 맞겠는데 제대로 된 고기를 잡아 보려면
이렇게나 먼 섬까지 와야만 하는가보다고만 생각했고 낚시를 하다보면
섬사람들이 양동이에 가득하게 멸치를 담아다 주었는데 멀쩡한 것은 미끼로 사용하라했고
배터지고 상처 난 멸치는 손으로 뚝~! 꺾어 밑밥으로 던져주라기에 따라서 흉내를 내보았지만
선생은 큼지막한 참돔도 여러 마리 끌어내는 것을 보았지만, 초보라고 우습게 보는지
제대로 된 고기는 내 낚싯대를 당겨 주지도 않았다.
겨울철에는 날씨를 고르기도 어려웠고 배편도 구하기가 어렵다며 비교적 가까운
진도 권을 몇 번 찾으면서 다음해의 여름까지 기다렸다간, 좋은 날을 골라서
몇 번 더 찾았지만 매번 우럭과 노래미 같은 시원치 않은(?) 고기뿐이었고,
볼락도 간혹 물렸겠지만 우럭이나 볼락이나 그 고기가 그 고기 같았으니
그저 걱정은 저 먼 길을 또 어찌해서 집으로 갈수 있을지 큰 걱정이었다.
칠십 년도에 가거 도를 찾아간 낚시꾼은 추자도에 있는 추자 야인이 최초였겠지만
제대로 개척을 해서 외지에 이런 섬이 있다고 알린 것은 유 선생님이었다고 하는데
낚시꾼과 관광객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소흑산도라고나 알려져 있던 최 남서 단에 있던
가거 도라는 섬이 제 이름도 찾고 외지로 알려지게 되어 오늘날, 가거도 사람들이
밥을 굶지 않게 된 것이 유 선생님의 덕분이라며 섬사람들은 고마워했는데
유 선생님이 가거 도를 찾는다고 알려오면 선생이 배를 타고 들어오는 날에는
가거도의 주민들이 모두 나와서 진심으로 환영하며 맞이했다.
박수도 치고, 깊은 인사를 해오기에 처음에는 이 양반이 무슨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분인가?
헛 짐작을 하기도 했지만 순박한 섬사람들이 진정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이 약간은
이상스럽게도 보였던 풋내기 시절이었는데 그때, 선생과 함께 묵었던 집들이 2구와 3구의
어느 집이었는데 내 몸 간수하기에도 바쁘고 정신이 없었으니 그저 그림자였을 뿐이었다.
찌낚시가 유행하면서 낚싯대도 가벼워졌고, 채비도 바뀌었고, 멀고 먼, 오가는 길이 지겨운
가거도 보다는 거문도나 추자도로 다니게 되면서 선생과도 연락이 뜸해졌고,
여수에서 거문도를 다니던 데모크라시라는 쾌속선은 낚시꾼이 늘어나자
추자도까지 연장해서 운행하기도 했는데 거문도에서 낚시를 하던 낚시꾼이
조과가 시원치 않으면 추자도로 옮겨가고 추자도에서도 거문도로 옮겨오고 하면
장사도 되고 서로 편하지 않겠느냐며 시작을 했지만 양쪽으로 옮겨 다니면서
오래도록 낚시를 할 수 있는 화려하거나 정신 나간 백수도 한정이 되어 있겠지만
어느 쪽 섬에서 조황이 시원치가 않다면 비슷한 라인에 있는 섬에서 무슨 좋은 조과가 있을까?
거문도나 열심히 다니던지 추자도까지 연결할 일이 아니었기에 거문도와 추자도를 연결하던 배편이 없어졌다.
한동안 자주 다니던 거문도 열풍이 가라앉으면서 거문도 유일의 목선을 운영하던 영길이 선장이
이제는 거문도에 고기가 없으니 자기도 그만 두겠다며 등을 돌렸기에 추자도 쪽으로만
다니게 되었는데 일찍 건강이 나빠진 유 선생님이 '낚시인의 집' 이라는 작은 가게를 열고
하추자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깊은골' 민박을 다닐때니 들러 보았는데
병환이 깊어지고 기억이 흐려진 후였기에 잘 알아보지를 못하셨고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지금이라면 한창일 나이에 일찍도 가셨다…….
선생은 우리나라 낚시 사에 한 획을 그은 분으로 낚시 광으로 알려진 영화배우 최무룡씨와 함께
최초로 독도에서의 낚시를 시도했었고 남대문 시장이 있는 회현동 부근에 유일하게
코리아바다낚시회가 있었는데 제법 낚시를 오래한 낚시꾼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천지회 창립멤버였다.
믿기지도 않겠지만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지렁이를 파는 낚시가게가 있던 시절이기도 했으니…….쩝…….
해남에서 낚시점의 배를 타고 추자로 낚시를 간 것이 구십년 대 말경이었는데
배 손질이 늦어져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젊은 낚시꾼이 방파제에서 낚았다며
제법 많은 수확물을 정리하기에 갯바위에서 보다도 더 많이 잡았다며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조행기에 첨부한 사진을 본 다도민박의 아지매가 결국은, 여기에서 다 만난다는 이야기를
다음번에 찾아간 추자에서 하기에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사진속의 젊은 낚시꾼이
유 선생님의 자제라고 했다,
“모르셨어요? 난 또 유 선생님 아들이라고 알기에 사진을 찍어줬나 했어요......”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가거 도에서 이 봄철에 볼락만을 낚아보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준비가 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개수로는 짐 덩어리가 네 개…….
뺄 수도 없는 물품과 혹시나 해서 넣은 물품이 하루 밤 낚시를 한다 해도,
나흘밤 낚시를 한 다해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저 부력의 전지 찌만 준비하려다간
불안한 마음에 결국엔, 3호찌며 4호 원줄에 목줄까지 챙겨들었고 볼락바늘도
13호까지 챙겨 넣었고, 결국엔 감성돔 바늘 8호까지 챙겨 넣고서도 무언가
빠진 듯한 기분이 드는 이 몹쓸 원도권의 대물 병....... -_-;;
기다리면 지루하지만 곧 다가오면 바쁜 날이기에 어둡기 전에 나서서 목포로 향하였고
뜬 밤을 보내고 오랜만에 타본 여객선에서도 편히 쉬지를 못했나보다…….
최신형 여객선 터미널이 들어서고는 처음으로 오가는 편을 이용해 보게 된 것이
만재도만을 전문적으로 다니는 만재피싱점이 문을 후부터니 벌써 십년은 됐는가보다…….
오늘은 가거도 쪽을 다니는 여객선 세 척 중에서 가장 낡고 느리고 작은 파란 배를
타게 되었는데 만재도의 민박집에서 내려다보면 매일 같은 시간에 세 척의 배가
번갈아 다니는 것을 오래도 보았기에 여러 번 타본 것같이 친숙한 느낌이다…….
세월 호를 일으켜 세우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화면과 물방울로 가려져서 흐리게 보이는 창밖을
번갈아 보면서 다시는 저런 불행한 일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저 가엾은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나라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전복 양식장이 가득한 다물 도를 지나면서
완도로 팔려 나가서 탈바꿈을 한다는 소리를 하던데 여기서는 왜 제목소리를 못 낼까?
낚시꾼이라면 누구나 해보는 이런 좋은 날은 평생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할 정도로
좋은 날씨며 잔잔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는데 흑산도를 지나 태도에 도착하니 더 날씨가 좋다.
여객선의 창문으로 태도의 간여가 보였는데 잠시 머뭇거리면서 껑충 건너뛰려면,
저절로 발바닥이 간지러워지는 거리에 떨어져 있는 널판 같은 편한 바위가 있는
태도의 간여에서 세 번의 밤을 보내면서 건너편의 칼바위에 있던 식량과 마실 물조차 떨어져서
살려달라고 울고 있던 낚시꾼 둘에게 과일이며 음료수와 얼음물을 자루에 담아 건네주어
살려준 일이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