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정선 5월2일)
98.5.2~4
오월 하늘이 가라앉을 때
난 떠났지
긴 숨을 가다듬고
그래 떠나야 해
아무하고도 아닌
아무것도 모르는 곳으로
아무도 찾지 않아서
길 위에서
길을 가며
난 생각들을 했지
길은 이어지고 이어지고
비는 내리고
또 내리고
나는 간다네
단조로운 자동차 기계 음 속에 갇힌 이 적막과
얼룩진 빗방울로 단절된 이 외롬과
가끔 서보는 길섶 숲속 푸른 물 뭍어나는 정적속으로
내 의식은 가끔씩 꺼내어져
맑은 계곡 물에 헹구어 지고
생각의 실타래는 산허리를 휘감아 오르는 비안개처럼
고삐가 놓여 다만
말없이 늠름한 나무들의 자태만 바라볼 뿐
아무도 없음과
아무 일 없음과
아무런 생각도 없는 그 텅 빔 속으로
그래 떠나야 해
오늘 비오니 내일
그 속의 (신록은)
그 빛나는 (신록은)
오월 햇살에 정말 눈물나도록 눈부실 거야
오월의 하늘이 가라앉을 때
난 떠났지
긴 숨을 가다듬고
2. (용화리 5월 2일)
그래서 다시 찾은 바다는
잿빛으로 납작 엎드려
음울한 울음을 울고 있었다.
상처받은 바다
바람은 흉포한 진주군의 말발굽처럼
먼 고원으로부터 거침없이 달려와
사정없이 너의 육신을 유린하고
너 불쌍한 바다는
그 대항의 흰 갈퀴 한번 세우지 못하고
그 위용 찬 포효한번 없이
처참한 몰골로 그냥 낮게 엎드려 울고만 있었다
버림받은 바다
돌보는 이 아무도 없는 바다
그 바다 단애 위
곳 부리 등대에 불 밝히고
끝 모를 깊은 어둠, 심연을 향해
화살처럼 내 교감의 낚싯줄을 쏘아 보낸다
바다야 깨어나라.
아니 잠깐
울고 싶으면 울렴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알지
내일 아침 해맑은 미소로 깨어나면 그뿐
난 알아
저 바람
저렇게 설쳐도
언감생심 너의 그 속 깊음에 견주려고
그냥 내버려둬 제 풀에 지쳐 스러질 때 까지
그보다 이렇게 조용하잖니
번쩍이는 번개도 없고
간지럽히는 석양이나 달빛도 없고
높은데서 보는 너는 지금 한없이 내려앉아 침울하지 않니
마치 회한에 젖은 여인네처럼
이럴 때가 좋아. 속내 깊은 얘기를 하기에는
내 교감의 낚시를 드리우니
네 살아 있음의 통신을 하렴
너를 사랑 한다 ꏀ
ꏀ너를 사랑한다.
3. (월천리 5월 3일)
내 뭐랬어
이 빛나는 날씨 좀 봐
하늘 아래 모든 게 고개 들고 팔 벌리고서
바람의 손길에 환한 웃음으로 화답하며
한없이 향기를 내뿜고 있지 않니
이 충만한 생명의 환희
이 부산한 생명의 유쾌한 소란스러움
대기는 벌써 뜨거워져 발효의 단내를 풍기고
눈은 끝 간 데 없이 맑고 산뜻함으로만 채워져......
이제 그만
이 모든 걸 한꺼번에 누리기에는 죄를 짓는 것 같아
이 모든 걸 혼자서 누리기에는 죄를 짓는 것 같아
쓸쓸함의 빈자리 하나는 남겨두어야 해
호산 에서 죽변 가는 길
그 오월 한나절
바다는 어젯밤 눈물을 잊고
한없이 고혹적 청남빛 단장
새하얀 탄성을 지르며
눈가는 끝에서 하늘과 맞닿아 교접하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 아래 스스럼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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