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를 버리며 빠져드는 낚시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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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를 버리며 빠져드는 낚시생각들...

G 6 2,500 2002.09.2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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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를 버리며 빠져드는 낚시생각들...




김 일석



장가들 때 샀던
지난 17년 동안 애지중지 덮개를 쒸워가며 사용해오던,
검정테이프로 목을 칭칭 동여매고도
거뜬히 서너 해를 버텨왔던
자그마한 딸깍이선풍기가 갑자기 목이 꺾여
쓰레기통에 내다버렸습니다.



옹기종기 꾸미고
아름다운 꿈을 꾸며 살던
초라한 대학가의 단칸방에서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해마다 여름이면 늘 싱싱 돌아가며
아무 탈없이 우리 식구들의 땀을 씻어주던
그 작은 딸깍이선풍기를 내다버리며
세월이 그만큼 흘렀구나 싶어
내심 쓸쓸해졌습니다.



그 작은 선풍기 하나로도
여름을 날 수 있었던 단칸방 살림이
에어컨에다 서너개의 선풍기가 있어야할만큼 살림이 불었고
애들도 쑥쑥 자라
이젠 제각기 한 살림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데 이리도 많은 것들이 필요한 지는 알 수 없는 일.
살아가는 동안에
또 무엇을 버릴 것이며 또 무엇을 들여놓을 지......



손때가 묻은 물건을
그저 낡았다고 쉽게 내버리지 못하는 성격인 탓에
집안 구석구석엔 잘 쓰이지도 않는 물건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아이들의 것은 금새 자라므로
후배들에게 주어 요긴하게 다시 쓸 수 있지만
수명이 다 된 허접한 살림살이는 나누어쓰지도 못하니
할수없이 그놈들을 닦고 기름 치며 보자길 씌워 보관하게 됩니다.
가스렌지도, 가습기도, 옷장도, 구두에다 셔츠 하나까지도...



마치 동남아 어디쯤에선가 봄직한
촌스런 초록색의 초창기 싸구려 릴대를
죽을 때까지 쓰리라 생각하며 애지중지하고 있으니
오랜 내 낚싯대는 아직도 한결같이 반들반들합니다.
오랫동안 즐겨온 나만의 낚시에
내가 늘 감사하고 만족해하는 것은
내 생각이 온전히 담긴 그것들을 들고 갯바위에 서면
마냥 다행스럽고 믿음직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다지 욕심이 덜한 편이라
잠깐의 쓰임새로 들여놓았다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후배들에게 불쑥불쑥 줘버려
언제나 내 낚시장비는 허름하고 보잘것 없습니다.



요즘은 고기도 제대로 못잡으니
무겁기만하던 아이스박스도 필요없어졌습니다.
설사 잡는다 한들 가져가질않으니
크기가 다양하던 갖가지의 아이스박스도 후배들에게 모두 넘어가고
낚시장비래야 직접 꿰어다 맞춘 어종별 전용대 세개와 릴...
초라한 듯 하지만 참 단순하고 여유로워 좋습니다.



때론 우리 집이 몇동 몇호인지
때론 우리 집 전화번호가 몇번인지조차 깜빡깜빡하는
희미한 내 두뇌구조상으로
챙겨야할 물건이 복잡하지않아 좋고
명료한 생각으로 나서는 출조길이어서 더욱 좋습니다.



언제나 낚시는 즐겁습니다.
한달에 한번을 나서든 일주일에 한번을 나서든
오랫동안 만지고 다듬어온 나만의 물건들로
나만의 생각으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낚시는
늘 기쁘고 즐겁습니다.



언젠가
오랫동안 함께 해오던,
목이 꺾여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선풍기처럼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나의 낚시도구가 없길 바라며
상념에 빠져드는 이 나른한 한나절의 창밖은
유난히 편안하고 고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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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G 찌매듭 01-11-30 00:00
태그가 많이 늘었고녀... 세련되고 보기가 좋고녀....음악 선곡도 캡이고... 보고싶고녀.... [09/24-13:34]
G 김일석 01-11-30 00:00
성님, 보고싶고녀....^^ 칭찬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우쭐) 좀 괜찮은 것 같아요?
성님, 늘 건강하시고 부산에 한번 다녀가세요...
[09/24-14:06]
G 블랙러시안 01-11-30 00:00
김이사님....몸은 괜찮으세요?
추석때 이사님과 함께 낚시를 할려고 했는데...
몸이 편찮으시다는 말씀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오래된 낚시장비도 소중하지만...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아니겠습
니까?
건강은 건강할때 지켜야 한다고 그러지요...
이사님, 9월 월차휴가가 남아 있습니다.
9월이 가기전에 평일날 시간이 나신다면.... 제가 갯바위에서 몸보신 시켜
드릴께요...^^ [09/24]
G 섬원주민 01-11-30 00:00
그림이 낭만적입니다. 천지에 음양의 기운이 교차하는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세요. [09/24-20:07]
G 김일석 01-11-30 00:00
러시안님, 형제섬 한번 갈까요? 몸보신 시켜주신다는데 은근히 기대가.....^^
원주민님, 언제나 건강하세요... [09/25-08:45]
G 캄피대 01-11-30 00:00
울산에 사는 캄피대입니다. 언젠가 연락주시면 모임에 참가하겠
습니다.
모임의 가입보다는 김일석님과 버들피리님을 뵙고 싶네요.
가급적이면 주말이 좋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메일은 날마다 봅니다) [09/27-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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