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낚시 내공이 10갑자는 족히 됨직한 형님이 계신다.
년 중 200일 가까이 볼락낚시만 다니니 이제는 도랑꾼(?)이란 반쯤 농 섞인 호칭으로 놀려대긴 하지만 대학교부터 감성돔을 잡고 다녔으니 조력만 35년이 넘는 초 베테랑이다.
겨우내 신나게 다니던 호래기가 씨가 말라버린 탓에 궁여지책으로 볼락낚시를 다니는 건데 짐짓 지겨워졌을 만도 했을 터, 거의 20년 가까이 들어왔던 감성돔 갯바위 포인트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는 뜻밖의 제의(?)가 들어왔다.
잠시 잊힌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14~5년 전, 인도네시아에 있는 불알친구를 만나러 가기 전날, 이번처럼 그날도 형님은 나에게 뜬금없는 동행 출조를 권했다. 수년 동안 들어왔지만 한 번도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던 전설의 포인트. 들물에 조류가 왼쪽으로 흐르다가 물이 빨라져서 난바다로 뻗어 나갈 때 조류에 태우기만 하면 50cm가 넘는 덩어리 감성돔이 쭉쭉 빨아 댄다는 곳. 눈물을 머금고 오른 인도네시아행 비행기 안에서 전송받은 2장의 사진에는 갯바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50cm급 감성돔 20마리와 V자를 그리며 웃는 형님의 모습이 있었다.
‘죽을 때까지 여기는 안 데리고 온다’라는 의미심장한 문구와 함께 말이다.
“아니 우짠일로 거기를 같이 가잔 소리를 합니까?”
“아무 소리 하지 말고 2시 반까지 장유로 온나”
이렇게 전설의 포인트 출조는 시작되었다. 희대의 뻘짓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까마득히 모른 채(?) 말이다.
새벽 5시 일제히 시작된 미조 출항시간. 본인도 미조 출조는 거의 15년만인 듯 하다.
반백이 넘어가면서 釣友도 하나둘씩 골프로 전향을 하고 귀차니즘을 핑계로 갯바위 출조를 멀리하다 보니, 아니 낚시 자체에 열정이 식다 보니(열정이 식었다고 표현했으나 실제는 계속되는 꽝에 지쳤다는 ㅠㅠ) 제대로 된 갯바위 찌낚시 출조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형님보다는 양반인 듯했다.
갯바위에 내려 주섬주섬 채비하는 형님의 장비를 유심히 보니 원줄이 심하게 꼬여있는 게 아닌가?
“형님 이 줄 어디 겁니까? 심하게 줄이 꼬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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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10년 넘은 거 같은데, 기억도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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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손질을 전혀 하지 않는 스타일인건 알고 있었으나 10년 동안 쓰지 않았던 원줄을 교체하지 않고 왔다니............
짬낚시로 볼락낚시를 하다가 여명이 밝아오자 본격적으로 감성돔을 노리기 시작했다.
약속의 들물도 어느덧 초들물을 지나 중등물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약속의 들물................. ‘초반에 들물 힘이 약할 때는 갯바위 근처로 붙어서 흐르다가 곧 완쪽 10~11시 방향으로 흐른다. 그때가 기회다’
열심히 발밑에 밑밥을 줘가며 채비를 흘린다.
그런데.............................................................................................
조류가 오른쪽으로 간다. 계속 간다. 심지어 잘 간다.
“걱정하지 마라. 금방 왼쪽으로 바뀔 거다”
순간, 떨리는 형님의 목소리를 캐치했다.
‘구라구나 ㅅㅂ ’
거꾸로 가던 들물조류가 갯바위 안쪽으로 말려 들어오면서 계속해서 밑걸림이 발생했다.
10년도 더 된 썩은 동아줄을 쓰고 있던 형님은 벌써 5개나 찌를 해 드셨다.
찌회수기를 건네주며 구멍찌나 건지라고 했지만 나안 0.3의 시력에도 호기롭게 안경 없이 낚시하던 35년 조력의 베테랑은 찌회수기에 달린 회수망에 좀처럼 구멍찌를 넣지 못하고 있다. 눈앞에서 떠내려가는 구멍찌를 바라보며 다이와 찌 회수기는 왜 이렇게 벌어지는 지름이 작냐는 형님의 사자후는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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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디고 나는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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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던 1호 구멍찌를 다 떠내려 보낸 후라 별수 없이 내가 가지고 있던 구멍찌를 빌려줘야만 했는데 올가을에 처음 써본 인낚 ‘제로마스터’가 시인성이 너무 좋아서 0.3 나안 시력의 형님을 위해 내가 가진 유일한 제로마스터 1호찌를 채비를 끊어가면서 건네주었다.
“형님 이 글 읽고 계시죠? 이런 동생 어디 없습니다”
물때는 어느덧 만조 턱밑까지 왔다.
수십 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전설의 들물조류는 여전히 날물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세월이 흐르면 조류방향도 바뀌냐고 한다.
이게 말인가 방귀인가...
시간은 10시 40분. 철수까지 1시간 정도 남은 상태.
드디어 조류가 왼쪽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10분 정도 갯바위를 타고 흘러가던 조류가 어느새 11시 방향으로 흘러가려고 꺾어지기 시작.
초긴장 모드로 캐스팅을 하고 흘려보낸다. 이어지는 형님의 캐스팅. 형님의 구멍찌가 내 찌 30cm 앞에 떨어진다.
“채비 엉켜요. 감고 다시 던지세요”
“그냥 흘리자 귀찮다”
거의 붙다시피 하며 두 개의 구멍찌가 흘러간다.
순간, 형님의 구멍찌가 눈앞에서 사라진다.
나는 봤다. 내 찌 앞에 어깨빵을 하면서 흘러가던 형님의 찌가 사라지는 것을. 잡어의 입질이 아니었다. 그리고 들었다.
“왔다!”
‘장비 오버홀’은 개나 줘버린 형님의 릴의 라인롤러에 고착된 베어링에서 나는 소리는 참으로 경쾌했다.
저런 장비를 가지고 낚시하러 다니는 형님도 한편 대단하긴 하다.
43cm 정도 되는 빵 좋은 감성돔이 올라왔다.

급하게 찌를 1호로 바꾸고 수심도 다시 조절해서 채비를 흘린다.
시야에서 검은색 살림망이 보인다.
“형님 저 살림망 우리꺼 아니예요?”
“아이쿠야, 갯바위에 줄을 안 묶어놨구나”
둘이서 바늘에 살림망을 걸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와중에 나안 0.3의 형님은 연거푸 헛챔질이다.
형님의 조력에 대해 난생처음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살림망을 갈무리하고 다시금 채비를 흘려보는데 이번에는 내가 흘리는 구멍찌 갯바위 방향으로 30cm 앞쪽에 찌를 던진다.
“아니, 원줄 올라타는데 왜 자꾸 같이 흘리려고 하세요. 감고 다시 던지세요”
“그냥 흘리자 귀찮다”
10초 정도 지났나? 나는 다시 보았다. 발맞춰 흐르던 형님의 찌가 사라지는 것을.
이번에는 씨알이 제법 크다. 형님은 감성돔 낚시할 때 브레이크를 쓰지 않는다. 감성돔에게 브레이크는 사치라고 늘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는 앉았다 일어서기를 2번 하더라.
브레이크가 사치면 앉았다 일어서는 건 뭐가 다른 걸까?
그런데 수면에 떠 오르는 감성돔 빵이 장난이 아니다. 여태 내가 본 50cm급 중에 빵이 젤 좋았다.
‘저 형님이 내 말만 듣고 채비를 거두었으면 2마리 전부 내 고기인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고 배야............

만조 되면 입질이 끊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밑밥을 준 터라 정작 들물방향이 한참일 때 밑밥이 동이 나버렸고 이렇게 전설의 포인트에서의 첫경험(?)은 끝이 나버렸다.
평소 감성돔은 현장에서나 먹을만하지 집에 가져가서는 먹을 생선이 아니라던 형님은 동생의 측은한 눈빛을 애써 외면하고 두 마리를 전부 가져가 버렸고 조과물 없이 빈손으로 올 수밖에 없었던 나는 친한 동생이 남해에서 운영하는 수제 유자도넛 4박스를 사서 보란 듯이 1박스를 형님손에 쥐어드렸다.
혹시나 헤어지는 길에 43cm급을 손에 넣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