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1983년 고향에서 군대(?) (방위)생활하면서 365일 바다낚시 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고향이 완도군 군외면 동화도이며 마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방위로서 6개월 근무하면서 어머님과 같이 농사일을 거두고 낚시하고 밤에는 촛불로 영어공부했던 시절의 낚시이야기입니다.
대학 2년후 휴학하고 2월 광주31사단에서 3주 훈련을 마치고 고향에서 경찰1명,전경2명 그리고 저인 방위1명 총 4명이 근무하는데 경찰근무초소가 우리집 방 한칸이다. 따라서 매일 낚시하는게 매일 해안근무가 되는 셈이다. 전경들은 낚시에 취미가 없고 잡은 고기 먹는데 소질이 많았다.
한달 부식비를 받아오면 소주 진하게 한잔 안주없으면 우리집 김치와 소금 간한 말려논 놀래미,솜팽이,장어를 몇마리 내와 굼불에 구워 간장에 찍어 먹는게 최고의 술안주였다.
그해 여름 동내 형과 둘이 장어낚시를 한 얘기입니다.
멸치,전어,디퍼리 등을 소금 간해 미끼로 하고 봉돌 약30호, 원줄 약15호, 목줄 약10호 2줄, 바늘 약7호를 사용하고 외줄낚시(고패질낚시)를 하는데 24시경 20여마리 장어를 잡아놓고 잠이 슬슬 올 때쯤 잠결에 엄청난 당김에 동물적으로 챘으나 바닥에 걸려 버렸다.
여러번 올리고 내리고 바늘을 벗길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더니 다시한번 묵직하게 당기는 감이 있어 "형" 뭐가 문것 같아 하자 형은 내게로 오더니 "대물이다" 하면서 장어를 올리면서 줄에 손가락 피부가 잘리면서 올리더니 "뜰채" 하자 랜턴을 준비하지 않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형은 영차하며 장어를 갑판위에 올리자 요놈이 우당탕 우당탕하며 목선에 딩구면서 야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형도 지금까지 이런 놈은 처음 잡아본다면서 10kg이상 되겠다며 한다.
그후 손가락 2~3개정도 두께의 장어를 20여마리 더 잡고 철수하였으며 대물을 탕으로 요리하여 동내 사람들이(총30여명, 지금은 10명) 한그릇씩 먹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낚시는 역시 가을철인 것 같습니다. 가을에 동내 큰아바지와 같이 소를 먹이러 갈때 소를 산에 몰아넣고 대나무낚시대를 들고 갯바위에 내려 가 10호 바늘에 납을 녹이고 닭털을 묶어 만들 농어바늘로 농어낚시 한 묘미 또한 기억이 납니다. 사리때 곶부리 와류지역에서 큰아버지와 저는 깔다구급에서 60~70급까지 30여마리를 잡아 동내 잔치한 일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강제로 당겨 많이 놓치기도 했지만 여러번 하다보니까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였으며 나중에는 큰아버지보다 제가 더 잡은 경우가 생기더군요
루어를 케스팅하고 살살 끌어주면 시커먼 수십마리 농어들이 달려들어 제일 일등한 놈이 물고 돌아서면 덜커덕 파이팅 손맛 흐흐흐흐흐흐 1m정도 갈구리로 아가미를 찍어 들어 올리던 그 시절 농어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 시절엔 들물이건 썰물이건 생멸치 몇마리 들고 아무데나 넣으면 막 늘어지는 솜팽이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50cm 되는 쥐놀래미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대나무낚시대를 꺽어 버리는 대물꺽지(우럭종류)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 여름 피서 온 서울 사촌 형이 주고 간 원투용 릴을 처음 만져보는 계기로 가을철 새벽에 릴, 대나무, 지렁이통, 대바구니 들고 다니면서 2개 목줄에 홍지렁이 끼워 원투하고 담배 한 물고 있을 때 릴대를 물 속 절반까지 끌고 가 겨우 대를 세우고 10여분 동안 힘을 쓰고 올리니 45급 2마리가 지금까지 손맛을 잊지 못하게 한 감섬돔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리고 한전이 들어오지 않아(2001년 7월 30일 처음으로 한전공급) 냉장고가 없던 시절 여름방학때 잡은 솜팽이,놀래미,감시를 소금간해 말려 개학때 서너박스 가져와 겨울방학때까지 반찬하던 그 고기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또한 썰물때 여에 올라 온 문어, 1m수심에 잡은 돌게, 눈 좋으면 띄는 전복, 해삼, 소라 등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주민들이 주낚을 갔다오면 1.5m 상어, 멍석만한 가오리, 미터급 민어, 50~80급 참돔, 미터급 농어, 10키로급 대물장어 등 그 많은 고기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찬바람 나면 왕멸치, 전어 들이 개바위 둠벙에 밀려 한바구리씩 주워 온 그 많은 고기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안가.
그리고 미역,돌김,톳,파래,듬북이,우뭇가사리,곤포 등 그 많은 해초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 예날이여 - ------------------------------------------
지금이라도 조금 남은 어족자원이 줄어드는 것을 모르고 주말이면 수많은 꾼들이(본인도 포함) 그것들을 잡으로 혈안이 되는 상황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저는 지금 광주광역시 서구청에 근무하는 월급쟁이입니다. 시간이 나 옛날의 그리웠던 시절 생각이 지금도 생생하여 몇자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유동채비: 아^^ 예날이여 그때 나도 동화도에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고 그래도 미스터 스탤론께서는 그런 맛이라도 느꼈으니 원이 없겠군요 이제부터라도 우리모두가 자연을 사랑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주위를 정돈하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01/18-13:46]
사고뭉치: 83년이면 신지도하고는 이곳에서 말하는 지역하고는 얼마나 먼지모르게 [01/18-18:39]
사고뭉치: 위의내용이잘못되어서 , 좋은글 이시고요 , 친구넘이 전경으로 신지도에서 근무하는 바람에 면회때문에 완도에서 배타고 신지도에 내려서 한시간정도 쯤걸어서 초소에 도착했던 경험이있으며 면회 끝나고 갯바위에서 몇시간 낚시를 한적이있는데 그때는 정말로 어족자원이 풍부했던것 같읍니다 . [01/18-18:45]
등대바위: 가슴이 답답하고 옛날이 정말 그립군요. 70년대 여천 초도에서 근무하며 낚았던 여러종류의 많은 고기들이 마냥 그립군요. 진짜 그런시절이 있었습니다. [01/24-16:35]
바다사나이: 미스타스텔론님의글 잘읽었습니다.저도광주살면서 낚시를좋아하는사람입니다.물론월급쟁이고요 스텔론님의근무지에제친구도 있습니다 기회있으면 낚시한번가시죠 [01/24-1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