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팔이 없는 낚시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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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팔이 없는 낚시꾼

G 9 3,683 2002.10.01 13:26
일찍이 공자(孔子)는 사람에게 세 가지 즐거움(樂)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즐거움을 낚시에서
찾으려는 사람이 있었다. 낚시에서 즐거움이라면 의례히 손맛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걸 얘기 하
자고 거창하게 공자까지 들먹일 이유는 없을 것이다.

심 경태 (어르신의 동의없이 실명을 밝혀서 죄송합니다.) 라는 분이 계셨다. 이 어르신은 믿기지 않는 일이
지만 낚시을 다니는 이유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다닌다고 하셨다. 그게 그분이 낚시에서 찾는 또 하
나의 즐거움이라고 했으니...

어느 해 겨울. 거제 지세포 선착장에 새벽 4시로 달려온 40여명의 낚시꾼들이 있었다. 차에서 금방 내린 사
람들은 추위로 이빨을 딱딱거리면서도 뭐가 그리도 좋은지 삼삼오오 모여서 마냥 즐겁게 히히덕거렸다. 마
치 특전사 전투병들 같은 차림세로 제법 나름대로 위용을 폼내 보지만 새벽 추위에는 어쩔 수 없는 듯 했다

하지만 낚시꾼들의 인내력은 참으로 괴이하다. 조금만 자리가 불편해도 투덜거리던 사람일지라도 그 섬
길 구부러진 고개길을 그렇게 흔들거리며 가거나 파도에 거진 짐짝이 다 되는 고초를 격는다 하더라도 낚
시를 위한 인내라면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하다.

어디 그것 뿐이겠는가 ! 차나 배가 조금만 늣어도 그냥 침을 튀기고 욕짓거리를 일삼던 사람도 그 진눈개
비로 몸서리치게 추운 겨울밤을 서서 꼬박 밤을 지새우면서도 감성돔 입질을 기다려준다. 또 자식놈 반찬
투정에는 그냥 버럭 화를 내던 사람일지라도 크릴 머리만 감쪽 같이 따먹는 감성돔에게는 지극히 관대하
게 물이 너무 차가운게 아닌가 채비에 이물감이 있어서 그런가 하면서 여간 잘 참아내는 게 아니다. 그러기
에 이런 해괴한 인내력으로 무장된 낚시꾼들이기에 새벽 바람 따위가 걸거적거리지는 못 할 것이다.

짐을 챙기는 사람, 뭐가 그리도 급한지 벌써 채비를 손질하는 사람, 어느 포인트에 꼭 내려야 된다고 거듭
설명을 하는 사람 등.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지세포의 주변 어촌과는 판이하게 40여명의 낚시꾼들은 분주
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중에는 왼팔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두꺼운 잠바을 그냥 어깨에 걸쳐서 그렇게
보이는 줄 알았는 데, 나중에 자세히 보니 오른팔 마져 없는 게 아닌가 ! 그날 그곳에서 그 어르신을 처음
봤었다. 지금도 그때의 충격은 잊지를 못한다.

" 고마 됬다 앙카나 ! 내가 쿨러를 맬낑게루 니는 마 낚시가방을 들고 오니라. "

그리고 보니 그 어르신 오른손은 보기에도 섬뜩한 두 개의 쇠갈구리였다. 거침없이 불쑥 들어내 이내 쿨러
줄을 걸어쥐는 데, 가로등 불빛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곳에 내려앉아 반짝거렸다. 대형 쿨러이니 만
큼 제법 무게가 있는 데, 그 어르신은 늘 그랬다는 듯 어깨에 들쳐맸다. 그러고서 여유를 주지않고 휘적휘
적 배가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 우째 저런 몸으로 낚시를 다 왔실꼬 ? "

" 오늘 처음 보는가베...!! 늘 그런데... 오늘은 김형이 저 분과 함께 내려줘야 하겠어... "

내 혼자 갸우뚱거리는 데, 언제 왔던지 낚시점 주인 이씨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부탁을 했었다.

포구를 떠나는 새벽 배는 그랬던가 어쨌던가 힘차게 치달린다. 연신 써치라이트를 이쪽 저쪽 밝혀보며 부
표를 용케도 잘 피해가는 배 선장만 무덤덤 그져 그런 표정이지 다른 모든 낚시꾼들의 눈빛은 마치 금방
낚아 올린 볼락의 눈처럼 반짝거렸다.

" 아~! 뭐하능기고... 고마 뛰내리모 될낀데 우예 저리 겁이 많노 ! "

몇몇이 내리고 고문님들이 내리는 차례에서 배를 차분하게 갯바위에 잘 접안해도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연세 높은 고문님들은 쉽게 뛰어 내리지 못하고 여러번 미적거리자 배 마스트에 기대고 있던 심씨
그 어르신이 버럭 고함을 쳤다. 고문님들과 같은 연배라고 했는 데, 그 분은 고문이라는 칭호를 달가워 하
지 않는다고 했다.

" 저래가 무신 바다를 나오노! 고마 민물에서 붕애나 낚을 일이지...쩝~! "

겨우 갯바위에 내려서 한숨을 내쉬고 있는 고문님들을 향해서 씨답지 않다는 그 분의 쓴소리를 남겨두고
우리는 다음 갯바위로 갔었다.

" 이쪽으로 내려라 ! 쿨러는 나중에 주고 우선에 낚시가방... "

잔나비라고 해야할까 ! 그날 그 분과 함께 온 사람은 그 분의 따님였는 데, 오히려 그녀가 더 더덤거리자
손수 불을 밝히고 내릴 곳을 알려주었다. 그러고서 그 갈구리손으로 갯바위를 찍어 올라가는 데, 난 그 분
의 민첩함에 그져 혀만 내두를 판이였다. 누가 먼저 내린다는 것도 없이 배가 갯바위에 이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뛰내려 함께 내리기로된 다른 사람들의 짐 마져 그런 몸으로 받아 나르는 게 아닌가.

" 아니~! 그거말고.... 응! 그걸... 조금 더 높여봐! "

그 분은 그의 딸이 펴준 민낚시대를 겨드랑에 끼우고 갈구리손으로 낚시를 받쳐 들던니만, 찌를 골라 수심
를 맞췄다. 그리고 미끼를 끼우자 휘리릭~ 어색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능숙한 한 동작으로 낚시
대를 드리웠다.

딸과 그녀의 아버지인 그 분들 둘은 그렇게 물끄러미 물에서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찌를 내려다 본다. 그리
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 음~! 떡망상어로구... 젊은 양반! 밑줄에 맻 홀 달았지? "

" 아! 1혼데요. "

내가 붉그레한 떡망상어를 한마리 올리자 그 어르신이 물으셨다.

" 내낀 1.5혼데...1호 줄 하나 묶어 줬으면 좋겠는 데...번거롭게 해 좀 그렇군... 줄을 타는 모양이야! "

그렇게 한참을 있었는 데도 아무런 입질이 없자 그 분은 내게 목줄 하나를 부탁했다. 떡망상어라고 내심
언짠게 생각하고 있었는 데, 그 어르신은 그게 아닌 모양였다.

" 어라차차.... 오~! 힘이 쪼매 좋은걸. 내 뭐라카드노 줄 탄다 앙깼나. 줄 바꾸니 고마 빨아삔다이가~! "

그 분에게 줄을 바꿔 드렸더니 금방 그 분의 낚시대에도 30cm 넘는 떡망상어 한마리가 걸려 들었다. 자리
에서 일어나 낚시대를 취켜세운 그 분의 자세가 아주 여유롭다. 연질의 민장대가 두어번 물속으로 처박는
데도 그져 즐겁다는 듯 컬컬거리신다.

" 햐~! 요놈봐라 어찌 이리도 잘 생겼나 "

그 분의 딸이 어렵게 올려준 망상어를 돌위에 놓고서 연방 감탄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망상어가 올라와도
언짠은 내색을 낚시 내내 할 수 없게 되었다.

" 그란디 어르신 우예 구명조끼는 안 입으셨나요? "

" 구명조끼...! 아~! 난 그딴걸 안 입어. "

점심시간이 되어서 라면이라도 끓여 먹어야 겠다고 버너를 준비하니 한사코 그럴것 없다며 그 분은 그의
딸에게 점심을 함께 마련하라고 하셨다. 그 바람에 우리는 뜻하지 않게 갯바위에서 여자가 차려준 점심을
따뜻하게 먹을 수 있었는 데,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이력을 말씀해 주셨다.

그러니까 6.25가 발발하고 물밀듯 밀려오는 북괴군과 안강전투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하다가 두 손이 그렇
게 되었다고 하셨다. 하루 아침에 불구의 몸이 되어서 죽을 생각도 여러번 했는 데, 그때마다 자신보다 더
처참하게 죽어간 전우들에게 볼 면목이 없어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불구를 더 아프게 만드는 건 사회의 냉대, 그것도 철저하게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이 사회의 인식에
울분이 삯이질 않는다고 하셨다. 자신이 사람 곁에 가까이만 다가 가더라도 마치 무슨 못 볼걸 본든 기겁
을 하고 달아나는 현실에 절망도 여러번 하셨다고 한다. 자신이 지켜준 나라에서 그런 홀대를 당하고 살아
가야 한다는 현실에 너무도 많은 실망을 하신것 같았다.

하지만 낚시터에서는 그게 아니였다고 한다. 낚시꾼들은 자신을 마치 멀쩡한 한 인간으로 받아들여 주었고
같은 동료애로써 함께 어울리게 해주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담배라도 하나 부탁하면 재수 없다는 듯
침을 뱉고 퉁멍스럽게 대꾸하지만 낚시꾼들은 스스럼없이 다가와 부담없이 자신을 대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그 어르신은 딸이 바뿌면 자신의 집사람을, 그게 안되면 운전기사나 사람 한명을 따로이 품을 주어
서 낚시터에 온다고 했다. 구명조끼를 안 입는 이유를 말씀 하실때는 자신의 그 불구된 모습을 들어 보이며
그런 형상으로 물에 빠지면 그냥 가야지 살려고 허우적거릴 이유가 있느냐면서 허탈하게 웃으셨다. 결국
그 분이 낚시를 다니시는 이유는 사람 취급을 받고 싶어서 그렇다고 하시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낚시에서 찾은 즐거움이 이보다 더 클 수 있을까? 난 그 분의 심정은 모르지만 모르긴 모르되 공자의 3락
에도 필적할 만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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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댓글
G ichobo 01-11-30 00:00
심경태님 내내 건강하시고 즐낚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왕이면 7자 감성돔도 물고 늘어지기를.... [10/01-15:21]
G ichobo 01-11-30 00:00
좋은글 올려주신 물망상어님도...^^; [10/01-15:22]
G 김일석 01-11-30 00:00
물망상어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늘 건강하세요....^^ [10/01-17:03]
G bblackmir 01-11-30 00:00
좋은글 감사합니다. 낚시가 참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 [10/01-19:33]
G 뽈라구 01-11-30 00:00
물망상어님.....잘 읽었습니다.
.
심경태 어르신......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움이 가득하신 낚시.... 오래도록 하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10/01-20:23]


G kbssss 01-11-30 00:00
그 할아버지는 몇해전 돌아가신 저희 아버님의 전우였을거라 생각합니다. 안강전투에서 소대장으로 참전하여 부대원 절반이상이 전사한 처참한 전투였다는것을 아버지를 통해서 들었죠. 그당시엔 소년병,학도병도 있었다고 하네요(병력이 부족해서).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물상어님을 통해서 그분과 연결이 되었음 좋으련만.. 글 고맙습니다.. --[10/02-15:41]
--


G kbssss 01-11-30 00:00
어이쿠! 실수로 똥그라미 모양이 스마일 반대가 되버렸네요. 수정이 안되는가요? --[10/02-15:47]
--


G bgj127 01-12-01 03:00
코끝이 찡합니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10/04-00:11]
--


G ych0110 01-11-30 10:00
211.199.36.113@ title="bandi@hitel.net">버들피리
수많은 목숨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낙엽처럼 떨어지던 그곳이 이젠 먼 옛날의 무용담의 꺼리로 회자되고 있지요.
제가 있는 곳이 안강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더러는 듣고 있답니다. 바로 옆에서 전우가 쓰러져가고, 사선을 넘어 혼자만 살아남은 어느 노병의 안강전투 이야기 속엔 아직도 피비린내 나는 절규가 묻혀 있습니다. 분명 우리가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는 분들이지요. 그분은 그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무척 위안을 받습니다. 조그마한 관심으로도 많은 위로를 받는 그분 앞에서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평화가 그분들의
목숨의 댓가였다는 것을...... --[10/04-11:21]
--


211.220.60.141비로
어르신.. 늘 건강하세요.. 어르신같은 분이 계셨기에.. 좋은 글 감사합니다..^^ --[10/05-00:50]
--


211.225.107.141덕유산
참 ~암 감동적 입니다. 두분 모두 행운이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10/06-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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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3.73.160난바다가조아
감동 그 자체다~~~~~~~~~^^* --[10/10-03:59]
--


"인간승리" 심조사님에게는 이 말도 모자라다 생각됩니다.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으시기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감동적인 글을 올려주신 물망상어꾼 대물포획 잘하시고 좋은 글 또또..... --[10/10-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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