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낚시를 가기전에 일주일을 준비한다. 장비에서부터 소품까지 하나 하나 챙기다보면 부족한 것, 없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퇴근길에 낚시점에 들러 꼼꼼이 산 뒤 혹 마누라에게 들킬까봐 양복주머니에 숨겼다가 마누라 잠들면 낚시가방, 구명조끼 꺼내어 다시 하나하나 챙겨 넣는다. 그리곤 다시 가방과 조끼를 원위치 시키면 완전범죄가 된다. 다음엔 잠자리에 누워 상상낚시를 한다. 이번엔 어느 포인트에 내려 대물참돔과 씨름을 하여 겨우 한 수를 한다. 의기양양하게 잡은 참돔을 갯바위에 올려놓고 쳐다보다 잠이든다. 그리하여 일주일을 보내면 한 달에 두 번 허락된 출조 금요일 밤이 오면 무슨 고래나 잡을 듯이 가방이며, 쿨러며, 서너개씩 메고 들고 미녀사냥을 떠난다. 2003년 5월 16일 금요일 밤 12시 애들과 마누라는 꿈나라로 달리고 나는 미녀사냥을 위해 통영 국도를 향해 달린다. 금년 10여회 출조중에 오늘이 7번째 국도출조니까 년중 50%이상을 국도를 간다. 내가 특별 히 국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고기(참돔)를 많이 잡기 위해서만 아니다. 사실 국도는 예전에 비해 어자원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선장은 수온이 떨어지고, 샛바람이 불어서라 하지만 물속에 들어가보지 않은 이상 알수가 없다. 새벽 1시 30분경 통영 중화동엔 낚시꾼이 제법 모인다. 일기예보는 북동풍이 9~13M/초속, 파고 2~2.5M 사실 주의보 수준이다. 국도는 통영에서 가장 난바다라 부지도를 벗어나면 장난이 아닐 것 같다. 하지만 토요일 오후부터 일기가 좋아진다니 강행으로 결심 . 새벽 3시에 국도행 낚시선에 몸을 실었다. 대략 20명 정도 되는 것 같다. 예상대로 국도 동쪽 포인트는 너울파도가 장난이 아니다. 새벽 4시경 바람과 너울이 덜한 농어바위 주변으로 다 내렸고, 구미에서 혼자 오신 조사님 한 분과 칼바위에 내렸다. 웬만한 포인트는 다 내려 봤지만 이 포인트는 처음이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2호대로 청개비 다섯마리로 첫 캐스팅. 수심은 대략 15M 내외. 별 어신이 없어 올려보니 청개비가 쭈욱 늘어진다. 손으로 만져보니 얼음이다. 샛바람에 수온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경험상 미끼가 이렇게 차가우면 참돔 낚시는 황이다. 낚더라도 낱마리나 상 사리 한 두마리가 고작이다. 그래서 속으로 마음을 접었다. 사실 난 낚시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언젠부턴가 욕지도와 연화도마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갯바위가 오염된 후 보다 깨끗한 섬, 왠만한 포인트는 너울파도가 낚시자리를 깨끗이 씻어 늘 깨끗한 곳. 섬 전체가 직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같은 곳. 그 곳 국도가 나를 국도매니아로 만들어 놓았다. 동쪽으론 대구을비도와 소구을비도 사이로 검붉은 태양이 뜨오르고, 남으로는 화물선 선수 (船首) 같은 간여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해지는 저녁이면 노을지는 남해바다아래 좌사리가 일렬로 서있고 북으로는 연화도 네바위가 보이는 천년고도. 그곳에 가면 몸도 마음도 상쾌하고, 기분도 좋다. 나에게 고기는 자연이 주는 보너스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잡아도 그만, 못 잡아도 그만. 토요일 아침 아홉시 . 남서쪽 직벽포인트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낚시점에서 그 포인트에 지난주 고기가 나왔다고 신신당부하며 내리라 하던 곳. 선장은 내려주며 또 한마디 보탠다. 물이 왼쪽으로 갈때 직벽자리 홈통에서 어신이 온다나. 어쩐다나. 오후가 되니 바람이 조금 약해진 듯 하나, 물은 여전히 차다. 날씨는 쾌청하여 좌사리도 뒤쪽으로 갈도까지 보인다. 구미에서 혼자오신 노조사님 쉬지도 않으시고 열심히 하시 는 걸 보니 죄스럽다. 오늘밤 대물과의 사투를 위해서는 힘을 충전해야 한다. 그래서 오후엔 갯바위 틈새 에서 잤다. 잠이 꿀맛이다. 노조사님도 잠시 몸을 누이셨다. 오후 네시경 낚시배로 도시락과 밑밥을 받았다. 늘 그렇듯이 낚는다는 보장도 없건만 밑밥은 정성스레 으갠다. 그리곤 미리 저녁도 먹어 두었다. 오후 4시30분경 초들물이 시작되어 밤 10시경 만조니까 어두워지면 이번 출조의 황금 물때다. 미녀와의 전투를 위해 낚시대도 2대를 펴놓았다. 2호대엔 3호 원줄에 2호 목줄을, 3호대엔 4호 원줄에 3호 목줄을. 전투준비는 끝났다. 내가 가진 무력으론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 그리 곤 미녀들의 습격만 기다리면 된다. 저녁 7시 반을 기점으로 주위는 어둠이 몰려오고 들물은 계속 차오른다. 밤 8시, 9시, 10시 역시 입질이 없다. 수온은 여전히 차고, 낚시자리에서 1킬로미터 전방에 집어등을 켠 어선때문에 주위는 대낮같다. 밤 11시 피곤도 몰려오고 낚시도 안되어 평평한 곳을 찾아 누웠다. 갯바위가 등을 찌르고, 모기가 입술을 훔쳐 입이 퉁퉁부었다. 이제 집에 있는 소파와 침대가 생각난다. 늘 누워 비비기만 했지. 고마움울 몰랐던 것. 모기가 계속 설쳐 가끔 잠을 깨었지만 새벽 5시까지 잘 잤다. 아침 아홉시가 철수니까 몇시간 안남았다. 정신을 가다듬어 열심히 해보지만 여전히 입질이 없다. 주위 낚시하시는 분들 어쩌다 노래미, 쏨뱅이, 볼락이 간간히 무는 것 같다. 일요일 아침 8시 철수준비를 시작했다. 물바가지로 깨끗이 씻어 내리고 장비도 챙겨 가방속에 꼼꼼히 넣었다. 매번 낚시가면 한두개는 잃어버리게 마련. 그래야 낚시점도 밥먹고 살지. 주위가 정리되어 둘러보니 내릴때만큼 깨끗하다. 속으로 고수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법. 어디 무협 소설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고 흐뭇하게 웃는다. 아침 9시 30분경 낚시선에 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국도 가 언제나 깨끗하게 보존되었으면, 게다가 다음달 내가 또 왔을 때 상큼한 캣내음으로 하룻밤 즐거이 보내 고 갈 수 있는 그런 곳이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이만 금번 낚시여행을 마칠까 한다. 초면에 동행하게된 구미의 문중 형님. 가만 생각해보니 저희 둘째형님이랑 비슷한 연배인데 노조사님 이라 부르면 실례겠죠. 나이 오십에 젊은이 보다 더 열심히 하시는 모습과 깨끗하게 낚시자리 치우시던 모습. 부담없이 웃어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애써 인연을 만들지 않더라도 엔젠가 또 건강하게 뵐 수 있기를 기원하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머리 숙여 감사드리면서 가시는 먼 길 잘 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상 졸필로서 5월 낚시여행을 마무리 합니다. 낚시를 사랑하시는 모든이에게 사랑과 행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