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촌뜨기(?)와의 동네낚시터 나들이
김일석
멀리 서울서 보고싶은 친구가 찾아왔다.
언제나 그랬지만 서울 낚시꾼들은
바다를 보면 사족을 못써
때론 거의 촌스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햇수로 15년 정도를 낚시했다는 그 친구에게
"넌 부산에 오면 조력 3년이라고 말 해!" 하고 우스개를 했다.
내 말인 즉, 낚시다운 낚시를 한 달에 한 번씩 한다고 했을 때
10년 해봐야 120회, 15년이면 180회다.
그 정도는 낚시에 꽂힌 부산 꾼들이 3년이면 넉넉히 해낼 횟수.
하긴 낚시에 입문한 지 얼마 안되는 후배 하나는
1년에 100회 정도의 갯바위 출조를 했다고 하니
가히 광적인 낚시가 아닐 수 없다.
서울지역의 낚시친구들을 만날 때면 언제나 느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시도때도 없이 열정적이고 장황한 낚시얘기와
갯바위에 섰다 하면 꼼짝도 안하고 낚시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밤을 꼬박 새우기도 예사고
무슨 스태미너가 그리도 좋은지
낚싯대를 꼬나쥐고 물때에 아랑곳 하지 않고 쉬지 않고 낚시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무슨 낚시에 한이 맺힌 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또한 지역적으로 멀리 낚시 한 번 가기가 쉽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자주 못가는 결핍감을 장비에 대한 관심으로 대신하려는 듯
고급장비에 대한 취향과 상식의 다양함은
정말 혀를 내두를 때가 많다.
오랜만에 날 만나러 내려온 이 서울촌뜨기(?) 낚시친구를 위해
난 세차도 하고 지갑도 좀 두둑히 챙겼다.
맛난 식사를 마치곤
동해안의 완만한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는 중에도
그는 끊임없이 낚시가 하고 싶다고 귀찮게 졸라 댔다.
그 와중에도 낚시가 하고 싶다니 역시 촌스럽기는 변함 없었다.
얼마나 졸라대는지 그만 항복하고 말았는데
집으로 돌아가
짧고 낭창거리는 동네낚시터 전용의 일명 엽기대(?) 두대를
밑밥통과 함께 챙겨서 나섰다.
남천동 방파제엘 데리고 가 채비를 던지게 했더니
그는 테트라포드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예의 꼿꼿한 자세로 낚시삼매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곳에 거대한 광안대교가 생기고 난 뒤
여름 밤바다의 풍경이 제법 모던해 졌고
여름바다라는 게 심심찮을 만큼의 눈요기감이 여기저기에 늘린 지라
아마도 흥겨운 여행의 기분이 들었으리라.
해운대를 지나 송정에서 대변으로, 칠암으로 옮겨가며
드넓은 바다와 작은 포구의 풍경을 본 친구는
그저 무척 즐거운 표정이었다.
칠암마을의 작은 방파제에서 낚싯대를 펴던 친구는 뜬금없이 내기를 하자고 했다.
"3년 뒤에 차 사주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후후~이게 웬 떡이야"......
난 속으론 제법 실용적인(?) 제안이다 싶어 쾌재를 부르며 승낙을 했다.
친구는 내가 정성 들여 만든 낭창거리는 4.5m 개조대에다 채비를 하고
난 짧은 두 칸 개조대에다 채비를 꾸렸다.
부산 인근의 동네낚시터에서 망상어와 잔챙이 벵에돔을 거는 낚시야말로
채비와 조작의 섬세함이 관건인데
아마도 친구는 나를 우습게 보았거나, 아니면 정말 자신만만 했거나 둘 중에 하나일 터.
동네낚시터에서 생활낚시를 즐긴 지 30년을 넘긴 내가
저 촌뜨기에게 게임에 져서 차를 사준다는 건(사줄 돈도 없지만)
로또에 당첨되기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드디어 시작 하는 신호와 함께 나란히 서서 채비를 던졌다.
편안한 옷으로 입는답시고 한복을 차려입고 나섰는데
난쟁이 똥자루만한 낚싯대를 방파제에서 휘두르자니
남보기가 아무래도 좀 여럽기는 했겠지만
승부는 승부인 거고 붙으면 일단 이기고 볼 일.
열심히 당기고 늦추어주고를 반복하다가
미세한 찌의 움직임과 함께 토독~하는 특유의 입질이 왔다.
휙~하는 소리와 함께 짧은 엽기대는 곧 활처럼 휘어지고
애꿎은 망상어 한 마리가 교통사고로 올라왔다.
난 "일때 빵!"을 외치며 방생하곤 다시 쪼으기 시작했고
잠시 뒤에 "이대 빵!" 하고 큰 소리를 질렀다.
무슨 재미가 그리 있었을까만
멀리서 온 친구 기분 맞춰주느라 나름대로 애를 쓰다보니 피곤이 엄습했다.
낚시고 뭐고 다 던져놓고 "몇 시간 접어준다"며
난 방파제 시멘트 위에 한복을 입은 채로 발라당 누워 금새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일어나보니
친구는 저쪽에서 여전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고
저녁노을이 어스름해질 때에야 대를 접자고 타일러 시합을 종료했다.
"남아일언 풍선껌"이라 하더니
금새 망상어 씨알이 잘아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나 어쨌다나...^^
해안가로 차를 몰고가
어두운 방파제 입구의 평상에 퍼지르고 앉아
시원한 밤바다의 바람을 쐬고 있자니 폐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약간의 해산물과 소주 한 잔을 친구랑 나누니 기분이 그저그만이었다.
전자찌 몇개가 수면에 떠 있는
작은 석축방파제엘 갔더니 역시 낚시꾼이 있었고
서울 촌뜨기에겐 좋은 구경거리일 듯 싶었다.
뭘 잡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가지매기"라고 짧게 답을 하였지만
하늘에선 갑자기 천둥번개가 쳐대니 아마도 가지매기는 커녕
지느러미 달린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기 어려울 게 분명해 보였다.
연신 퍼부을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지만
바닷가의 밤풍경은 그저 아늑하고 시원하여 언제 보아도 막힘이 없으니......
모처럼 놀러온 친구는 그렇게 놀다 기분 좋게 올라가고
난 다시 꽉 짜여진 일상으로 돌아오고 말았지만
낚시꾼의 우정이 꼭 낚시터에서 깊어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music ...유리창엔 비
photo ...김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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