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에서 긴꼬리벵에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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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에서 긴꼬리벵에돔을

G 17 3,135 2006.01.10 20:22
2003년 1월 집사람과 2박 3일 간의 단출한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집사람이야 지난 번 제주 여행 때 가보지 못한 마라도며 만장굴 등의 방

문이 여행 테마였지만, 태공은 인터넷바다낚시에 연일 중형급 긴꼬리벵에

돔 사진을 올리는 마라도 현지 민박집들의 호조황 소식에 더 관심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커피색 미끈한 나신으로 뭍에 오른 40센티급 긴꼬리벵에돔의 사진들....

그 어떤 포르노잡지의 표지 모델이 이보다 더 섹시하고 도발적일까?....

혹시 집사람에게 그런 마음을 들킬까봐 태공은 짐짓 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봅니다. 어쨌든

이런 연유로 태공부부는 서로 다른 목적에 의기투합해 손뼉을 마주쳤고 여행

짐에는 길다란 낚시가방 하나가 추가되어 광주발 제주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일찌기 창문쪽 좌석을 예약해둔 터라 태공은 길다랗게 이어지는 다도해국

립공원의 여러섬들을 천천히 내려다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섬

들이 끝나갈 즈음 태공의 가슴 속에는 잠신 흥분이 일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옹기종기 모인 섬들 중 사자모양을 한 섬 하나가 우뚝 솟아있었습니다. 그

것은 TV에서나 보던 추자도의 사자섬이 분명했습니다. 바다낚시 20년이 가

까워지는 그 시점에서 단 한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섬, 언젠가는 가봐야

할 숙명의 섬이 발 아래로 천천히 사라져갔습니다.



공항에서 삼방산 밑 유람선 선착장까지 택시로 이동하여 늦은 점심을 먹었

습니다. 한겨울임에도 제주에는 관광객이 늘 붐비는 모양입니다. 유람선

안에는 제법 많은 승객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삼방산(7).jpg



유람선에서 보는 삼방산입니다.




삼방산 끝자락을 지난 유람선은 가파도를 지난후 마라도에 닿았습니다.



가파도(6).jpg




가끔, 달리는 것은 배가 아닌 섬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가파도)




마중나온 민박집 트럭에 짐을 맡기고 우리는 걸어서 섬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새로운 풍광들..

집사람이야 천하태평 느린 걸음이지만 해질녘에 왕성한 입질을 보인다는

긴꼬리벵에돔 생각에 괜히 조바심이 났습니다. 눈치 챈 집사람은 섬을 한

바퀴 더 돌기로 하고 태공은 서둘러 낚시를 준비했습니다.

천천히 돌아도 30분이면 다 도는 손바닥만한 섬에 북서풍이 몰아치고 있었

습니다. 덕분에 포인트는 동쪽과 동남쪽 일부로 제한되고 이미 선점된 포인

트에 태공이 끼어들 자리는 단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설사 평온한 바다였다

하더라도 알맞은 낚시 인원은 20여명 정도나 될까?... 하지만 당시에 들어

온 마라도 낚시 인구는 줄잡아 민박집 1군데에 30명 곱하기 3이니 90여명

쯤 될거라는 민박집 주인의 말씀이니.... 에휴~ 뭔가 속은 듯 한 기분이었

습니다. 그래도 이미 비벼온 밑밥이니...



포인트(8).jpg



요 바위 밑에서 대를 뽑아듭니다만....





남단비 앞으로 내려가보지만 일명 포인트라는 곳마다 서로 어깨를 맞대며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남들 방해하지 않는 웅덩이에 서서 몇주걱 던져

보다가 날이 저뭅니다. 조과는 당연히 꽝!

어둠을 뒤로하고 민박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민박집은 열 몇 마리의 씨알급

긴꼬리벵에돔 손질이 한참이었습니다. 너댓 개의 상이 차려지고 벵에돔회도

완성되었습니다. 평소 생선회 좋아하는 집사람은 맛있겠다며 미리 군침을 삼

킵니다. 하지만 집사람과 태공이 받은 밥상에는 그냥 밥만올라왔습니다. 하

긴 치열한 포인트 싸움과 파도 맞아가며 잡은 귀한 고기를 잘 알지도 못하는

부부에게 권할리는 없었겠지요. 밥을 반도 비우지 못한 채 집사람은 제 손을

끌고 밖으로 나가잡니다. 그리고 바로 근처 횟집으로 갔습니다. 주문한 벵에

돔회를 기다리는 동안 집사람은 두런거립니다.



"내 참 어디 먹어보란 소리 한 마디만 들었어도 이렇게 서운하진 않겠네...”



딴은 그러네.... 맞장구로 응수해주지만 태공의 맘도 그리 편치는 않았습니다.




긴 여행에 지친 집사람과 저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벌집처럼

이어진 허름한 건물 구조로 인해 옆방의 소음은 물론 가장 먼 방에서 하는

큰기침 소리까지 다 들려왔습니다. 깜빡 잠들었다가 엄청난 소음에 놀라 깨어

보니 장속도 그런 장속이 없었습니다. 도시 같으면 온갖 소음들로 인해 왠만

한 소음은 묻히기 마련이지만 이 조그마한 섬에서는 인간이 내는 소리 그 자

체가 소음이었습니다. 식당 겸 거실로 쓰이는 곳에 설치된 TV에서는 새벽녘까

지 큰소리의 영화소음이 흘러나 왔고 건너 방에서는 카드 도박을 하는지 밤새

시끄럽게 떠들어대다가 급기야는 돈을 잃은 한 사람이 내 돈 안 내놓으면 다

찔러 죽인다는 고함소리와 함께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주인은 아는지 모르는


지 민박집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난장판 그 자체였습니다. 거기까지는 그런대

로 참을만했습니다. 새벽 3시, 방문 앞 복도에서 큰소리로 저희들끼리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가 가관이었습니다.



“이방 손님? 야 웃기지마~ 이런 데를 자기 부인 데리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냐?”


“하긴, 안 봐도 뻔하다 뻔해~”



우리 방문 앞에서 나누는 대화였으므로 당연히 우리 부부를 두고 나누는 대화였을

터입니다.


집사람이 물었습니다.



“낚시꾼들 다 그래? 당신도 그래?”




불현듯 천당과 지옥은 사후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당과 지옥은 바로 인간들이 사후가 아닌 생전에 살아가는 동안 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새벽 5시가 되자 크게 들리던 TV소음도 도박꾼들의 싸움도 잠잠해져갔습니다.

부지런한 낚시꾼 한둘이 출조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집사람은 그

제야 밀린 잠을 잔다며 이불울 끌어올렸고 태공은 출조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여객선 선착장 옆의 포인트에 걸어갔습니다. 다행히 새벽의 공기는 신선했습

니다. 어느덧 날이 새는지 빨간 전자찌가 빛을 잃을 때까지 입질은 없습니다.

수평선으로 올라오는 일출을 보다가 불현듯 찌를 바라다보니 슬금슬금 사선

으로 잠겨듭니다. 곧바로 챔질하여 대를 세우니 강력한 힘이 전달되어옵니다.

드디어 마라도에만 있다던 오짜 벵에돔을 걸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1.7호대에

4호원줄, 5호 목줄로 단단히 무장한 채비이니 버티는 데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놈은 자꾸만자꾸만 아래로 파고듭니다. 세게 조여 놓았던 드랙이 두

번 풀리고 펌핑 해서 줄을 세 번이나 회수했는데도 놈의 힘은 줄어들지 않았

습니다. 그러다가 5분 후쯤 사력을 다한 녀석이 희끄무레 수면에 모습을 비춥

니다. 벵에돔이 아닌 돌돔이었습니다. 줄무늬가 없는 회색빛 수컷 돌돔이 다

시 물 밑을 향해 곤두박질 쳤습니다. 그리고 대가 휘청 하늘을 향해 일어섭니

다. 늘어질 대로 늘어져 용수철처럼 배배꼬인 목줄 끝에 뻐드러진 감성돔 5호

바늘이 대롱거립니다.
대를 갯바위에 기대어놓은 채 쪼그려 앉아 놈이 사라진 물속을 물끄러미 바라


볼 뿐이었습니다.

낚시대를 접었습니다.

아침밥 안 먹을 거냐는 집사람의 전화를 받고 그냥 짐챙겨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 첫배를 탔습니다.

마라도에서 먹기로 했던 해물 자장면은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아침 첫배가 오

는 열시나 되어야 문을 연다는데 더 이상 섬에 머무르고싶지 않았습니다.


본섬에 도착한 태공부부는 일상적인 제주 여행객이 되었습니다. 차를 랜트하고

대정읍 옛날 거리에서 맛있는 벵에돔국으로 간밤에 지친 속을 달랬습니다.



주상절리(8).jpg



주상절리에는 촬영대가 있더군요. 그래서 갑돌이도

태공도 이와 똑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간밤, 마라도에서 일금 3만원을 주고 사먹었던 벵에돔 한 마리보다 훨씬 더 큰

벵에돔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 국 두그릇을 만들어주더군요. 가격요? 놀라지마

세요, 일금 일만 4천원입니다. 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이 여행의 큰

즐거움이라는 걸 다시한번 깨닳으며 일상적인 제주여행객이 되어 여기저기 돌

아보며 남은 일정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성산일출(6).jpg



성산일출이 왜 좋은지.... 올라보니 바로 알겠더군요.




지금 마라도엔 긴꼬리 벵에돔 낚시가 제철을 맞을 터인데.... 그때처럼 지금도

여전히 북서풍이 불어댈런지.... 지금도 그때처럼 많은 낚시꾼들이 몰려들런지...

그러면 그 많은 낚시꾼들은 어디서 대를 드리울지....

3년 전 태공처럼 잠 못자고 맘상하지나 않을런지....

3년이 지난 지금 마라도에서 들려오는 긴꼬리벵에돔 소식에 오지랍 넓은 태공이

걱정스레 중얼거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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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댓글
G 컬리수 06-01-10 21:14
잘 읽었습니다.
정말 글을 멋드러지게 쓰시는군요.
G 불량감시 06-01-10 22:03
참 정갈스런 글입니다. 가끔 다정한 부부조사를 보고 내뱉었던 말 중에
결례스런 말은 없었을까 걱정이 되는군요.
이 번에 출조를 가게되면 잡은 고기 먼저 풀어야겠네요.
돈으로 따지면 얼마하지 않는데.. 그 놈의 고기가 뭔지...
G 갯바위의왕자 06-01-10 23:11
잘 읽었습니다....돈이 뭔지....마라도 가고 싶네요...
G 삼여 06-01-11 09:49
소문난 잔칫집(마라도)에 먹을것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큰 기대와 설레임에 단잠을 주무시지도 못했을터인데....
까만밤을 헤이며 스러움으로 감싸고 오신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G 달현 06-01-11 19:32
어부인과 함께한 마라도...
저도 제주에 살지만 민박집 다른손님들이 어디서 오신 분들인지 모르나 인심한번 꽤나 고약하네요.
갯바위서 같이 낚시 하면 모르는 사람에게도 자리돔회 한점,라면 국물 한모금이라도 권하는게 낚시꾼 인심이거늘...
게다가 민박집에서 밤늦게 떠들고,노름하고 지X도 하고..민박집 주인까지 탓하고 싶진 않지만 너무 심했네요.
제가 대신 사과 올려도 될까요?
다음에 다시 오시면 손맛,입맛 실컷 보시고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G 태공바위 06-01-11 20:49
변변치 않은 글에 관심과
격려의 글을 올려주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일도 있구나 하시고
혹여 가실 때 참고하시라는 뜻으로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G 돌방구리 06-01-11 21:06
실감나는 조행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2년 전에 집사람과 애들데리고 낚시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만,
가족을 데리고 가기에는 불편함이 많은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태공님의 좋은 글솜씨 종종 구경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즐낚하십시오
G 구름도사 06-01-11 22:10
태공바위님의 인품을 느낄수 있읍니다.
글도 우찌 그렇게 편안하게 잘 쓰십니까?ㅎ
낚시를 누구 못지않게 좋아하시지만 또한
여유롭게 즐기실줄도 아시는 멋진분인것 같읍니다.ㅎ
G 참볼락 06-01-11 22:33
추자도를 뻔질나게 다니다가,지겨워 진 10년전 어느해 마라도에
긴꼬리 잡으려 간 적이 있었읍니다.조그만 섬에 평화롭고,아름다운
경관이 좋아,인심도 좋겠지 생각했는데,영 아니더군요.주민들은 없고
장사치만 있는 섬이더군요.관광객,낚시꾼을 봉으로 여기는 섬이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마라도입니다.
G 갯바위의왕자 06-01-12 12:56
마라도...초코파이도 따블로 가격 받아먹기는 기본....500원짜리 사발면도 따블...다 따블이라 보시면 됩니다.
G 자연양식 06-01-12 14:22
97년 대물벵에돔을 잡아보겠다고 비행기타고 낚시갔던 섬.
마라도...

그때는 저녁식사때 고기못잡은 꾼들도 다같이 모여서
맛난 긴꼬리회를 맛보고, 지리국에 홍삼까지 맛보곤했는데...
마라도도 이젠 인심이 야박해 졌는지...

바다에 고기는 많지만, 사람의 맘속에 고기는
언제나 부족한듯...

언제나 한번다시가볼까 생각하던 마라도 였는데
옛기억이 다 깨어지는 느낌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G 마리나 06-01-12 16:34
읽다가 느낀 점....

태공바위님의 부인은 굉장히 미인이신 모양이다......
G 오렌지카운티 06-01-13 01:54
제주도에사는 제가 부끄러워지는 이유는 무엇인지^^;;,,,,태공은 없고,꾼만 들끌어니,고기는 간데없고,부끄러움만 가득 하네요 ㅋㅋㅋ
G 부시리인생 06-01-16 15:12
조행기 실감나게 읽었습니다... 어쩌면 낚시인의 현실을 그대로 하얀 도화지위에 좋아하는 물감으로 채색하신것 같고, 외로움을 더하는 바다풍경과 긴꼬리 벵에돔을 몇마리 걸어 파이팅 했더라면 더할 나위가 없었겠죠.. 부인과의 제주도 여행은 아마 귀가하실때 까지 그놈의 벵에돔으로 머리가 혼란스러웠을듯 합니다.. 어제 욕지에 다녀왔는데 님의 조행기 보고 저도 마누라와 한번 기회를 만들고 싶군요.. 건강하세요
G 태공바위 06-01-16 15:52
그저 그런 이야기에
분에 넘치는 격려를 해주신 조우님들...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마리나님의 추리처럼 제 집사람도, 저도
그저그런,
아랫배 적당히 나온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
낚시 좋아하는 낚시꾼일 뿐입니다.

조우님들의 과한 칭찬,
좀더 많은 얘기 들려달라는 요청으로 간주하고
틈나는대로 글 올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G 제주피쉬헌터 06-01-18 20:55
정감있는 글이었습니다.
그래도 제주에는 기회 있을때마다 자주 오세요.
어복 충만하시고 가정에 행복이....
G 암초지대 06-01-29 14:08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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