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두 가지는, 마른 논에 물 대는 소리와 갓난아기의 엄마 젓 넘기는 소리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여름 가뭄에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쫙쫙 갈라져 가는데 물 대는 소리는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 어떤 오케스트라의 음악소리보다 황홀할 것이다. 또한 갓난아기가 꿀꺽, 꿀꺽 목구멍으로 엄마 젓을 넘기는 소리는 여자가 아니라 알 수는 없지만 미루어 짐작컨대 황홀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낚시꾼에게는 다른 두 가지가 있지 않을까?
하나는 감성돔을 걸었을 때 물속에서 도망가려는 고기와, 끌어내려는 꾼과의 사이를 연결하는 낚시 줄 울음소리가 으뜸일 것이고, 뭍으로 올라온 감성돔이 갯바위 위에서 몸을 뒤척이며 내는 써어억 써어억 소리가 두 번째 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아마도 본인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이번 출조는 일년을 기다려온 벵에돔 낚시다. 장소를 거제로 갈까? 여수로 갈까? 한참을 고민하여 여수로 결정했다. 아직까지 거제 쪽에서 올라오는 조황이 여수보다는 뒤쳐진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에서였다.
5월에 추자도 팀이프 상반기 지역대항 낚시대회와, 결혼10주년 기념 여행 다녀온 휴우증으로 쩐도 많이 깨졌고 무엇보다도 양심상 또 갔다 온다는 말을 할 수 없어서 가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못 간다고 했더니 형님과 동생들의 낚시 일정도 자동적으로 취소되었다.
우리 형제들의 출조는 항상 그랬다. 내가 이곳저곳 조황을 알아보고 예약을 하고 무엇을 대상어로 할지, 장소는 어디로 할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추진해야 했다. 그런데 본인이 빠진다고 하니 낚시 일정은 자동으로 취소되는 것이었다.
“이번에 나는 안 되니까 형들과 니들끼리 갔다 와”
마음은 가고 싶었으나 양심상 어쩔 수 없기에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붙들고 말을 했다.
“어떻게 안돼? 형이 빠지면 전부 취소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사촌동생 훈이의 간절한 목소리에
“안돼”
라고 단호히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여보 낚시 가자는 거 내가 안 된다고 했더니 전부 취소 됐어”
라고 했더니 집사람 왈
“그래~~~ 되게 부담되네......”
“당일치긴데 갔다 오면 안 될까?”
집사람의 말투가 완강한 부정적 말투가 아니라서 슬쩍 떠 보려고 물어 보았다.
“일찍 철수해서 집에 오면 그렇게 늦지는 않을 텐데......”
넘어 올 것 같은 느낌이라 쐐기를 박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집에, 저녁 6~7시에는 도착해야 고기 손질하고 먹고 치우는데 밤 8~9시에 도착하면 늦은 시간에 이리저리 벌려놓는 것 때문에 집사람이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럼 갔다 와, 어차피 애들도 학교 가는 주라서 토요일에는 할 일이 없으니까?”라고 의외의 승낙이 떨어졌다.
출조하기로 해놓고 어디로 정할지 전화통을 붙들고 이러저러한 얘기 끝에 여수로 가기로 했다. 특히 여수에 있는 포인트 24시 최중길 사장의 말에 의하면 조황이 살아나고 있고, 고기가 뜨는데 입질이 예민하여 요령이 없어서 잡아내질 못하고 있다는 말에 여수로 정하게 되었다. 또한 여수는 금오도와 안도 등 포인트가 넓게 분포되어 있어 내릴 수 있는 곳이 많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했다.
은행에 다니는 동생이 월말이라 결산을 해야 하는 관계로, 인천에서 출발이 늦어져 밤 10시가 되어서야 당진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벵에돔이 뜨기만 한다면 마릿수는 확보될 것이고 벵에돔 숙회를 만들어 먹을 욕심에 출발부터 설레었다.
작년 인낚을 통해 알게 된 어부왕님과의 동행출조에서 발포찌 조법으로 벵에돔을 잡았던 기억을 되살려 발포찌와 벵에헌터를 준비했다. 나는 무조건 빵가루로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낚시점에 12시 30분 까지는 도착해야 하는데 아무리 밟는다 해도 무리였다. 그나마 고창 담양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낚시점에 도착한 것은 새벽 1시 경 이었다. 최중길 사장님이 나를 제외한 형제들의 밑밥을 미리 개어 놓아 준비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이것저것 소품을 챙겨 소호 항에서 기다리는 동성호에 몸을 실었다.
잠깐 앉아서 조는 사이 최중길 사장님이 “발전” 하는 소리에 뱃전으로 나갔다. 나와 사촌동생 훈이가 함께 내리고 큰형, 작은형이 막내 동생과 함께 내리기로 했다. 내가 내린 곳은 전날 고기가 제법 나와 주었던 포인트라고 했다.
우선 민장대로 볼락을 잡아볼 생각에 청개비 미끼를 끼워 캐스팅을 해 보았다. 이곳저곳 찔러 보았으나 볼락은 나오지 않고 밑 걸림만 계속해서 생겼다. 볼락 낚시를 포기하고 라면을 끓여 한 젓가락 한 후 잠깐 눈 좀 붙이려 누웠는데, 하늘의 별이 쏟아질 것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바람도 없고 날씨도 좋아 대박의 느낌이 온몸에 느껴지는 것이 기대 만땅 이었다.
4시 30분부터 채비를 했다. 벵에돔이 뜰 것을 예상하여 발포찌 채비를 하나, 뜨지 않을 것을 예상하여 전유동 채비를 각각 준비했다. 날이 훤해져 빵가루 밑밥을 한 주걱 뿌려주니 수면으로 뭔가 뽀글뽀글 하는 것이 벵에돔이 뜬 것으로 착각했다. 발포찌 채비에 빵가루 미끼를 끼워 밑밥 한 주걱을 뿌린 후 밑밥위로 채비를 동조 시켰다. 뭔가가 빨고 들어가서 챔질 해 보니 자리돔이 나온다.
옳거니 자리돔이 있으니 그 밑에는 벵에돔이 있겠구나 생각하고 손놀림이 더 빨라졌다. 빨리 띄워야 한다는 생각에 밑밥을 계속해서 주고 캐스팅을 했으니 자리돔과 복어새끼만 계속 올라왔다. 그러는 사이 날은 밝아졌다. 편광안경을 쓰고 내려다보니 자리돔, 망상어, 복어가 밑밥에 새카맣게 몰려다니고 있었다.
벵에돔이 부상하는 것이 보이지 않아 전유동으로 채비를 바꾸었다. 조금 멀리 캐스팅하여 앞쪽으로 끌어당기는 방법으로 해보았으나 벵에돔 입질은 없었다. 훈이는 계속 용치 놀래미만 잡아내고 있었다. 가끔 고등어가 잡히기는 했어도 치어수준의 유딩어 수준이었다. 그런 유딩어를 잡고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훈이의 표정은 환상이다.
형들과 우리는 벵에돔을 먼저 잡는 사람이 전화를 하기로 했었는데 작은형의 전화가 왔다. 준수한 씨알의 벵에돔을 잡았는데 수심 5미터 권에서 입질을 받았다고 했다. 형의 채비는 5B 구멍찌에 4B 수중찌를 달고 목줄에 B봉돌 2개를 채웠다고 했다.
기다리는 벵에돔은 나오지 않고 다른 곳은 어떤가 하고 최중길 사장님께 전화를 해보니 낱마리이긴 해도 전부 손맛은 보고 있다고 한다. 고기 나오는 곳으로 옮겨 달라고 하니 흔쾌히 옮겨 주기는 해도 우리 자리가 괜찮은데, 못 잡아내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하신다.
옮긴 곳은 부도와 소부도가 바라보이는 곳이며, 전유동으로 낚시해 보았다. 편광안경을 쓰고 밑밥을 뿌려보니 뭔가 희끗희끗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벵에돔인줄 알았다. 발포찌 채비를 재빠르게 투척하고 자세히 보니 벵에돔이 아닌 숭어였다. 그러나 숭어도 물어주지 않는다. 집중적으로 열심히 해보았으나 벵에돔은 끝내 우릴 외면했다. 앉아서 쉬고 있는데 수면위로 왠 시커먼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쳐 가고 있었다.
“야 훈이야 저기 물고기 봐라, 저게 우릴 능멸하려 물위서 떠서 다닌다....... 헐”
철수 길에 배에 올라보니 조사님들 마다 밑밥 통에 몇 수씩의 벵에돔이 담겨 있다. 형들도 작은형이 5마리 큰형이 1마리 막내가 꽝으로 도합 6마리를 잡았다. 작은형이 잡은 준수한 씨알의 벵에돔을 들고 마치 내가 잡은 것처럼 기념촬영을 했다.
모델은 수준급이다. ㅎㅎㅎㅎㅎ ^:^
낚시점에 도착하니 최중길 사장님이 먹고가라고 고기 손질하고 있다. 매번 홈피(www.point24.co.kr)에 올라오는 벵에돔 숙회를 오늘은 먹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사촌동생 훈이가 그냥 올라가자고 한다. 일요일이 장인 생신인데 오늘 동서들과 함께 처가에서 모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작은형이 잡은 고기는 그대로 사촌동생 훈이의 아이스박스로 담겨졌다. 낚시점에서 깨끗하게 비늘치고 내장까지 제거하여 얼음까지 채워 아이스박스에 담아 주셨다.
당진에 도착하여 한 마리만 달라고 사정사정 하여 벵에돔 숙회를 만들어 먹었다. 프라이팬을 달궈 포 뜬 벵에돔의 껍질을 바닥으로 해서 3초 정도 손으로 누르고 있다가 누르던 손을 떼면 벵에돔이 쪼그라드는데, 이때 얼음물 속으로 넣었다가 물기를 제거하고 먹으면 쫄깃한 회 맛이 기가 막히다.
신경 써서 포인트 선점해 주시고, 옮겨 주시고, 고기 손질까지 해서 챙겨주신 포인트24시 최중길 사장님께 감사를 드리고, 안전사고 없이 사업번성하시길 바랍니다. 벵에돔이 완전히 뜨면 연락 주십시오. 다시 한번 도전하겠습니다.
만약 거제로 갔으면 어땠을까?
또 가고 싶어도 집사람에게 염치없어서 간다는 말도 못하겠다. 뻔한 월급에 마이너스 통장이 늘어나는 것을 알기에.......
6월 14일 인낚 주주클럽 모임인 욕지도에서 다시 한번 도전해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