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류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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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류선생님.....

G 7 2,100 2002.04.07 02:16

꽤나 오랜만이다.
멀리 떠나는 낚시여행인지라
뜨뜨미지근한 흥분과 상쾌함이 온 몸을 휘감는 듯 했다.
이제야 철이 드는지
마누라는 낚시 떠나는 남편을 붙잡고는 좋아하는 시원한 국물김치가 있는 식탁을 차렸다.


낚시 가는 날 해질녘쯤이면
은근히 부아채우기가 일쑤였던 마누라가 웬일인지 용돈까지 쥐어주니
참 희한한 일이었다.
밥을 먹는둥 마는둥 국물김치를 후루룩 마시면서 현관을 나섰다.
언제나 그렇지만 수다쟁이들의 낚시이야기는 즐겁기만 하고,
그 속에 넘치는 낚시꾼 특유의 익살은 보기만해도 유쾌해진다.


낚시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낚시보다는 바다를 만나고, 바다보다는 사람을 만난다.
오늘은 누구랑 짝을 지어 낚시를 하나...
고민하다 동호회 고문이신 류선생님과 파트너가 되기로 했다.
민물낚시를 즐기시던 분인데다 갯바위 낚시 경험이 별로 없어
지난 6년간 은근히 내가 "싸부"역을 자임하고 나섰던 분이시다.


자그마한 체구에다
기질적으로 너무 과묵하셔서
때론 바로 곁에 계셔도 찾을 때가 있을 만큼
늘 소리소문 없는 그런 분.


어차피 낚시란 몇 시간 집중해보아 성과가 없으면
그저 도란도란 살아가는 이야기나 하는 게 남는 것.
모처럼 류선생님과 오붓하게 갯바위에 내리고 보니
역시 낚시보다는 바다가 좋고 바다보다는 사람이 좋았다.


주섬주섬 짐을 추스린 뒤 갯바위에 퍼지르고 앉으니
밤새 한 숨 붙이지도 못하고 차를 달려온지라
피곤이 엄습하였다.
"낚시를 할까, 잠을 잘까"
고민을 하고 있자니 류선생님은
마치 질주하는 고속도로에 한가롭게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달리듯
천천히, 그 특유의 몸짓으로 대를 펴고
케미라이트 하나를 셋팅하곤 자리를 잡으신다.


나는 낚시복을 입은 그대로
갯바위의 옴팡진 곳을 찾아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맑은 계곡에서 플라이낚싯대로 매미를 잡는 꿈을 꾸었고
곧 난데없는 돌고래 입질을 받아 한참을 파이팅 중이었다.
내가 갯바위에서 꾸는 꿈은
예외없이 낚시하는 꿈이며 모두 다 터무니없는 개꿈이다.


눈이 부셔 일어났더니 벌써 해가 중천에 떴다.
"낚시를 할까, 계속 자버릴까" 남모르는 갈등을 하다
얼굴을 모자로 덮고는 다시 꿈나라로 빠졌다.
몇 시간을 잤는지 모른다.
푹 자고 일어나니
수면의 뽀오얀 물결과 류선생님은 한 폭의 그림 마냥 어울리며
변함 없이 찌를 응시하고 계신다.


삼부도 귀신골창 입구 직벽 위에 나란히 서서,
때로는 미소를 가득 머금고
흘깃흘깃 서로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며,
지난 6년 간의 예사롭지 않은 깊은 믿음, 존경 그리고 우정에 대하여
새삼 생각해보았다.


근 삼십여 년을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한 아이를 위해 쏟아부은
그 깊고 깊은 인내와 헌신에 대하여...
삶의 아픔이 사무치도록 지독히 가슴을 파고들어도,
한결같이 희망과 관용을 놓치지 않으신 놀라운 지성...

아, 삶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보다 현란한 수식어를 찾아
그저 드러내지 못해 안달인 우리네 과시욕 조차 넉넉히 품고 감싸며
당신의 절절한 아픔을
특유의 침묵과 미소로 걸러내시는
존경하는 류선생님.


인생을 살며
이렇게 좋은 분들과 낚시를 할 수 있게 되었음이
내겐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불현듯 사진을 찍고 싶어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귀신골창 둘레를 받치고 선 웅장한 갯바위,
저 멀리 거문도를 둘러싼 툭 트인 하늘,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속에서 마치 한 그루 나무처럼 반듯이 서서
물결을 응시하는 한 사람을 앵글에 담고싶었다.


어색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서서
미소를 지으시는 류선생님을 바라보며,
당신의 치열한 투쟁이 생각나 갑자기 눈이 시려왔다.
혹 눈물이 안경 너머로 비칠까봐
햇살 따가운 하늘을 바라보며 그저 태연히 셔터를 눌렀다.
앵글 속에선 바다가, 갯바위가, 사람이
어떻게 하나가 되며,
또 어떻게 사는 것이 진실한 것인지
나더러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양심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무엇이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역시 영민한 물고기는
우리의 서툰 채비와 미끼를 탐하지 않았다.
"류선생님, 나랑 같이 낚시오시면 고기 못잡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잡힐 때 되면 잡히겠지요."라며 조용히 미소 지으셨다.
생각해보면 아주 명쾌한 정답을 주신 것 같다.
"맞아, 고기란 게 잡힐 때 되면 잡히겠지."


그렇게 장비를 정리하고 주변청소를 깨끗이 마치니
예의 주섬주섬 어디에선가 누룽지과자를 한 봉지 꺼내시곤 권해오신다.
따스한 햇살 아래 걸터앉아,
배를 기다리며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나의 낚시하는 생각을 평화롭게 만들어주신다.
언제나 녹녹한 격을 어디서고 잃지 않으신
존경하는 낚시꾼 류선생님.
당신은 내게 정녕 행운이자 기쁨입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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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
G 자연사랑 01-11-30 00:00
국문학을 전공한 본인도 님의 글을 읽으면 행복해집니다. 존경하고 싶습니다. 진솔한 글이기에 가슴이 시려 옵니다. 이세상에서 제일로 훌륭한 글이 바로 진실한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의 글이니까요. 좋은 나날이 되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04/07-03:37]
G 신덩이 01-11-30 00:00
김일석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김일석님께서 이곳에 올려주시는 글을 통하여...글을 읽는 모든이 또한....평화로움과 여유로움....그 느낌을 함께 나눌수 있을겁니다..^.^....항상 좋은글 감사드리며...........불러주실날을 손꼽아 기다리며...신동올립니다...^.^.. [04/07-11:46]
G 김일석 01-11-30 00:00
자연사랑님....국문학을 하셨군요....^^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낚시를 하며, 그저 좋은 분들을 만나 진솔하게 어울리며 사는 게
나날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언제 시간나시면 오프라인에서 차 한잔 하고 싶군요...
그리고 신덩이님...
님의 프로필 잘 보았습니다....활동을 많이 하시더군요...^^
조만간에 님과의 즐거운 만남을 준비하겠습니다.
동해안 감생이 너무 괴롭히지 마세요....*^^*
안녕히.... [04/08-09:59]
G 어촌계장 01-11-30 00:00
자연속에 유유자적, 사람과 더불어 이심전심, 카메라에 담은 사진은 물아일여의 경지인지...... [04/08-18:20]
G 자연사랑 01-11-30 00:00
김일석님, 답변 감사합니다. 언제든 시간이 허락하면 뵙고 싶습니다. 저는 동해안 조그만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좋으신 나날이 되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04/09-22:28]
G 류홍근 01-11-30 00:00
깊이감명 [04/22-21:14]
G 류홍근 01-11-30 00:00
책에서많이만나뵈었구만요앞으로도계속건강유지하시고좋은글부탁드려요 [04/22-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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